1. 개요
필리핀 공화국은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7,641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국가이다. 수도는 마닐라이며,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는 케손시티이다. 필리핀은 지리적으로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해 지진과 화산 활동이 잦으며, 태풍의 영향도 자주 받는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풍부한 천연자원과 높은 생물 다양성을 부여했지만, 동시에 자연재해에 취약한 특성을 지니게 했다.
필리핀의 역사는 선사 시대 네그리토인의 정착으로 시작되어 오스트로네시아인의 이주와 함께 초기 국가들이 형성되었다. 900년부터 1565년까지는 토착 왕국들과 이슬람교의 유입이 있었으며, 1565년부터 1898년까지는 스페인의 식민 통치를 받으며 로마 가톨릭교가 전파되고 갈레온 무역이 이루어졌다. 필리핀 혁명(1896년~1901년)을 통해 잠시 독립을 쟁취했으나,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1898년~1946년).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일본에 점령당했으며(1942년~1945년), 전후 1946년에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독립 이후에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독재(1965년~1986년)와 이에 맞선 1986년 EDSA 혁명을 거쳐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필리핀의 정치 체제는 대통령 중심 공화제이며, 입법부는 양원제로 운영된다. 주요 국제 관계는 미국과의 전통적 동맹, 일본과의 경제 협력, 그리고 중국 및 아세안(ASEAN) 회원국들과의 다자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주요 외교 현안 중 하나이다. 군사적으로는 국토 방위, 대테러, 재난 구호 등을 주요 임무로 하며, 치안 및 인권 문제는 지속적인 과제로 남아 있다.
경제적으로 필리핀은 신흥공업국으로 분류되며, 농업 중심에서 서비스업과 제조업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주요 산업으로는 농업, 전자제품 및 식품 가공을 포함한 제조업, 그리고 BPO(업무 처리 아웃소싱)와 관광을 포함한 서비스업이 있다. 해외 필리핀 노동자(OFW)의 본국 송금은 국가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관광 산업 또한 주요 외화 수입원이다. 사회 기반 시설은 교통, 에너지, 정보 통신 등이 있으며, 지속적인 발전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필리핀의 인구는 약 1억 1,400만 명(2024년 추정)으로 세계 12위 수준이며,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용어는 필리핀어와 영어이며, 로마 가톨릭이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주요 종교이다. 교육 제도는 K-12 기본 교육을 바탕으로 하며, 고등 교육 기관도 다수 존재한다. 필리핀 문화는 토착 문화와 스페인, 미국, 중국 등의 외래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가족 중심주의와 공동체 의식이 강하며, 다양한 축제와 전통 예술, 요리 등이 발달해 있다.
2. 어원

필리핀이라는 국명은 16세기 스페인 제국의 왕세자였던 펠리페(훗날 펠리페 2세 국왕)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542년 스페인의 탐험가 루이 로페스 데 비얄로보스는 레이테섬과 사마르섬을 당시 아스투리아스 공이었던 펠리페 2세의 이름을 따 "Felipinas펠리피나스스페인어"라고 명명했다. 이후 "Las Islas Filipinas라스 이슬라스 필리피나스스페인어"라는 이름이 스페인이 점령한 필리핀 군도 전체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스페인 통치가 확립되기 전, 이 지역의 섬들을 지칭하기 위해 스페인인들은 "Islas del Poniente이슬라스 델 포니엔테스페인어" (서쪽의 섬들), 포르투갈인들은 "Islas del Oriente이슬라스 델 오리엔테포르투갈어" (동쪽의 섬들),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사용했던 이름인 "San Lázaro산 라사로스페인어" (성 라자로의 섬들) 등 다양한 명칭을 사용했다.
필리핀 혁명 기간 중, 말로로스 의회는 국가를 República Filipina레푸블리카 필리피나스페인어 (필리핀 제1공화국)라고 선포했다. 미국 식민 당국은 스페인어 명칭을 번역하여 필리핀을 "필리핀 제도"(Philippine Islands영어)라고 불렀다. 미국은 필리핀 자치법(존스 법)에서 "필리핀 제도"라는 명칭을 "필리핀"(the Philippines영어)으로 변경하기 시작했다. 공식 국호인 "필리핀 공화국"(Republic of the Philippines영어)은 1935년 헌법에 미래 독립 국가의 이름으로 포함되었으며, 이후 모든 헌법 개정에서도 유지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필리핀 내부에서는 국명을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독립운동가 안드레스 보니파시오는 "타갈로그인의 국가"를 의미하는 "카타갈루간"(Katagalugan타갈로그어)을 주장했고, 제10대 대통령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하여 "고귀하게 태어난"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알려진 "마하를리카"(Maharlika타갈로그어)로 변경하려 시도한 바 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 역시 "마하를리카"로의 국명 변경에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3. 역사
필리핀의 역사는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민족과 외부 세력의 영향을 받으며 다채롭게 전개되었다. 초기 인류의 정착과 토착 사회의 형성, 이슬람의 유입, 스페인과 미국의 오랜 식민 통치, 그리고 독립 이후의 민주화 과정과 현대적 발전은 필리핀 역사의 주요 흐름을 이룬다.
3.1. 선사 시대 (900년 이전)

현재 필리핀 지역에 초기 호미닌이 거주했다는 증거는 약 709,0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칼라오 동굴에서 발견된 유골은 약 50,000년에서 67,000년 전에 살았던 알려지지 않은 종인 호모 루소넨시스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필리핀 군도에서 가장 오래된 현생인류 유적은 팔라완섬의 타본 동굴에서 발견되었으며, 우라늄-토륨 연대 측정 결과 약 47,000년 전(±11,000~10,000년)으로 추정된다. 타본인은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최초의 인류 이동 경로를 따라 남아시아 해안을 거쳐 현재는 물에 잠긴 순다랜드와 사훌랜드로 이주해 온 네그리토로 추정되며, 이들은 필리핀 군도의 초기 거주민 중 하나이다.
최초의 오스트로네시아인은 기원전 2200년경 대만에서 필리핀에 도착하여 바탄 군도(이곳에서 이장이라 불리는 석조 요새를 건설했다)와 루손섬 북부에 정착했다. 옥 유물은 기원전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대만에서 온 원료로 루손에서 제작된 링링오 옥 장신구도 발견되었다. 기원전 1000년경까지 필리핀 군도의 주민들은 수렵 채집 부족, 전사 사회, 고지대 금권 정치 사회, 항구 공국 등 네 가지 유형의 사회로 발전했다.
3.2. 초기 국가와 이슬람의 유입 (900년 ~ 1565년)

필리핀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 기록은 서기 900년의 라구나 동판 명문으로, 초기 카위 문자를 사용하여 고대 말레이어로 작성되었다. 14세기경에는 여러 해안 대규모 정착지들이 교역 중심지로 부상하며 사회 변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일부 정치체는 아시아 전역의 다른 국가들과 교류했다. 중국과의 교역은 당나라 후기에 시작되어 송나라 시대에 확대되었다. 서기 2천년기 동안 일부 정치체는 중국의 조공 체제에 편입되었다. 광범위한 교역과 외교를 통해 푸젠성 남부에서 온 한족 상인들과 이주민들이 필리핀으로 유입되었고, 이들은 점차 정착하여 수세기에 걸쳐 민족 간 통혼을 이루었다. 인도 문화의 특징인 언어 용어와 종교적 관습은 14세기경 힌두교화된 마자파힛 제국을 통해 필리핀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15세기까지 술루 제도에 이슬람교가 확립되었고 그곳에서부터 전파되었다.
10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필리핀에 세워진 정치체로는 마닐라, 톤도, 나마얀, 팡가시난, 카볼로안, 세부, 부투안, 마긴다나오, 라나오, 술루, 마이 등이 있다. 초기 정치체들은 일반적으로 귀족, 자유민, 부채로 얽매인 예속민이라는 3층의 사회 구조를 가졌다. 귀족 중에는 자치 집단(바랑가이 또는 둘로한)을 다스리는 지도자인 다투가 있었다. 여러 바랑가이가 연합하여 더 큰 정착지를 형성하거나 지리적으로 느슨한 동맹을 맺을 경우, 그중 가장 존경받는 구성원은 "최고 다투", 라자, 또는 술탄으로 인정받아 공동체를 통치했다. 14세기에서 16세기 사이의 인구 밀도는 잦은 태풍과 필리핀이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한 점 때문에 낮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포르투갈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1521년에 도착하여 이 섬들을 스페인령으로 선포했으나, 막탄 전투에서 라푸라푸의 군대에 의해 살해되었다.
3.3. 스페인 식민 시대 (1565년 ~ 1898년)

카스티야 왕국에 의한 필리핀의 통일과 식민화는 스페인 탐험가 미겔 로페스 데 레가스피가 1565년 누에바에스파냐에서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많은 필리핀인들이 노예와 강제 징용된 선원으로 누에바에스파냐로 끌려갔으며, 반대로 많은 라틴 아메리카인들이 군인과 식민 개척자로 필리핀에 오게 되었다. 인트라무로스에 위치한 스페인령 마닐라는 1571년 필리핀 총독부와 스페인령 동인도의 수도가 되었으며,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스페인 영토의 중심지가 되었다. 스페인은 분할 통치 원칙을 이용하여 현지 국가들을 침략하여 현재 필리핀 영토의 대부분을 단일 행정 체제 하에 통합했다. 흩어져 있던 바랑가이들은 의도적으로 도시로 통합되었고, 그곳에서 가톨릭 선교사들이 주민들을 기독교로 쉽게 개종시킬 수 있었으며, 초기에는 혼합주의적 양상을 띠었다. 스페인 수사들에 의한 기독교화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로 정착된 저지대 전역에서 이루어졌다. 1565년부터 1821년까지 필리핀은 멕시코시티에 기반을 둔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의 영토로 통치되었으며, 멕시코 독립 전쟁 이후에는 마드리드에서 직접 관리되었다. 마닐라는 비콜과 카비테에서 건조된 마닐라 갈레온을 통해 태평양 횡단 무역의 서쪽 중심지가 되었다.
스페인 통치 기간 동안, 스페인은 원주민 반란을 진압하고, 모로 해적 활동, 17세기 네덜란드와의 전쟁, 18세기 영국의 마닐라 점령, 남부 이슬람 세력과의 갈등 등 외부의 군사적 공격을 방어하는 데 국고를 거의 소진했다. 필리핀 행정은 누에바에스파냐 경제에 부담으로 여겨져, 필리핀을 포기하거나 다른 영토와 교환하는 것이 논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섬의 경제적 잠재력, 안보, 그리고 이 지역에서의 종교적 개종을 계속하려는 열망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반대에 부딪혔다. 식민지는 스페인 왕실로부터 연간 보조금으로 유지되었으며, 평균 25만 페소로, 보통 아메리카 대륙에서 온 75톤의 은괴로 지급되었다. 7년 전쟁 중인 1762년부터 1764년까지 영국군이 마닐라를 점령했으며, 1763년 파리 조약으로 스페인의 통치가 복원되었다. 스페인은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을 레콩키스타의 연장선으로 간주했다. 스페인-모로 분쟁은 수백 년간 지속되었으며, 스페인은 19세기 후반에 민다나오섬과 홀로섬 일부를 정복했고, 술루 술탄국의 모로족은 스페인의 주권을 인정했다.

19세기에 필리핀 항구들이 세계 무역에 개방되면서 필리핀 사회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정체성이 변화하여 필리피노라는 용어가 필리핀에서 태어난 스페인인뿐만 아니라 군도 전체의 모든 거주민을 포괄하게 되었다.
1872년 현지에서 모집된 식민지 군인 200명과 노동자들, 그리고 활동가 가톨릭 사제 세 명(곰부르사)이 의심스러운 이유로 처형된 후 혁명적 정서가 고조되었다. 이는 마르셀로 H. 델 필라르, 호세 리살, 그라시아노 로페스 하에나, 마리아노 폰세 등이 조직한 프로파간다 운동에 영감을 주었으며, 이들은 필리핀의 정치 개혁을 주장했다. 리살은 1896년 12월 30일 반란죄로 처형되었고, 그의 죽음은 스페인에 충성하던 많은 사람들을 급진화시켰다. 개혁 시도는 저항에 부딪혔고, 안드레스 보니파시오는 1892년 무장 반란을 통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는 비밀 결사 카티푸난을 창설했다.
카티푸난의 푸가드 라윈의 외침은 1896년 필리핀 혁명의 시작을 알렸다. 내부 분쟁으로 인해 테헤로스 총회가 열렸고, 이 총회에서 보니파시오는 지도자 자리를 잃고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혁명의 새로운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1897년 비악나바토 협정으로 인해 홍콩 군타 망명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듬해 스페인-미국 전쟁이 발발하여 필리핀에까지 이르렀고, 아기날도는 귀국하여 혁명을 재개하고 1898년 6월 12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1898년 12월, 스페인-미국 전쟁 이후 파리 조약에 따라 필리핀은 푸에르토리코, 괌과 함께 스페인에서 미국으로 할양되었다.
1899년 1월 21일 필리핀 제1공화국이 공포되었다. 미국이 이를 승인하지 않자 적대 행위가 발발했고, 현지 미군 사령관이 휴전 제안을 거부하고 신생 공화국이 선전포고를 하면서 필리핀-미국 전쟁으로 격화되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기근과 질병이 주된 원인이 되어 25만 명에서 100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많은 필리핀인들이 미군에 의해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어 수천 명이 사망했다. 1902년 필리핀 제1공화국이 몰락한 후, 필리핀 조직법에 따라 미국 민간 정부가 수립되었다. 미군은 필리핀 공화국을 연장하려는 시도를 진압하고, 술루 술탄국을 확보하며, 스페인 정복에 저항했던 내륙 산악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립하고, 한때 무슬림이 대다수였던 민다나오에 기독교인들의 대규모 재정착을 장려하는 등 섬들에 대한 통제를 확보하고 확장해 나갔다.
3.3.1. 필리핀 혁명과 제1공화국 (1896년 ~ 1901년)
스페인의 장기간 식민 통치에 대한 필리핀 민중의 불만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조직적인 독립 운동으로 발전했다. 호세 리살과 같은 지식인들의 계몽 운동은 민족의식을 고취시켰으며, 이는 안드레스 보니파시오가 이끄는 비밀결사 카티푸난의 무장 봉기로 이어졌다. 1896년 8월, 카티푸난의 봉기는 필리핀 혁명의 시작을 알렸다.
혁명 세력은 내부 갈등을 겪기도 했으나, 에밀리오 아기날도를 중심으로 규합되어 스페인군에 맞서 싸웠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이 발발하자, 아기날도는 미국과 협력하여 스페인 세력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같은 해 6월 12일, 아기날도는 필리핀의 독립을 선언하고, 1899년 1월 21일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인 필리핀 제1공화국(말로로스 공화국)을 수립했다.
그러나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심은 필리핀의 완전한 독립을 허용하지 않았다. 1898년 파리 조약으로 스페인으로부터 필리핀의 통치권을 넘겨받은 미국은 필리핀 제1공화국을 인정하지 않았고, 이는 결국 필리핀-미국 전쟁(1899년~1902년)으로 이어졌다. 압도적인 군사력과 잔혹한 탄압 끝에 미국은 필리핀 제1공화국을 무너뜨렸고, 필리핀은 다시 외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필리핀 제1공화국은 비록 단명했지만, 필리핀 민족의 독립 의지와 자치 능력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3.4. 미국 식민 시대 (1898년 ~ 1946년)

1898년 파리 조약으로 필리핀은 미국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필리핀 제1공화국은 미국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고 필리핀-미국 전쟁을 벌였으나, 미국의 우월한 군사력 앞에 패배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필리핀인이 희생되었으며, 미국은 도서 정부를 수립하여 직접 통치를 시작했다.
미국은 필리핀에 영어 교육을 보급하고,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을 미국식으로 개편하려 했다. 1902년 필리핀 조직법과 존스 법을 통해 점진적으로 필리핀인에게 자치권을 부여하는 정책을 폈다. 필리핀 사회는 미국의 영향으로 근대화되었지만, 동시에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 종속되는 구조가 심화되었다. 필리핀인들의 독립 열망은 계속되었고, 마누엘 L. 케손과 같은 정치인들의 노력으로 자치 정부 수립을 향한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미국의 식민 정책은 필리핀 사회에 교육 보급, 공중 보건 개선 등의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으나, 경제적 착취와 민족 자존감 훼손이라는 부정적인 영향도 남겼다.
3.4.1. 필리핀 자치령과 제2차 세계 대전 (1935년 ~ 1946년)

1934년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타이딩스-맥더피 법에 따라, 1935년 필리핀 자치령(코먼웰스)이 수립되었다. 이는 10년 후 완전 독립을 목표로 하는 과도기적 자치 정부였다. 마누엘 L. 케손이 초대 대통령으로, 세르히오 오스메냐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자치령 정부는 국방, 사회 정의, 불평등 해소, 경제 다변화, 국민성 함양 등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타갈로그어를 기반으로 한 필리핀어가 국어로 제정되었고, 여성 참정권이 도입되었으며, 토지 개혁도 고려되었다.
그러나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 제국이 필리핀을 침공했다. 미군과 필리핀군은 격렬히 저항했으나 패배했고, 필리핀은 일본의 점령 하에 놓였다. 일본은 호세 P. 라우렐을 대통령으로 하는 필리핀 제2공화국이라는 괴뢰 정부를 수립했다. 일본 점령기 동안 필리핀 민중은 극심한 고통을 겪었으며, 바탄 죽음의 행진, 마닐라 학살 등 수많은 전쟁 범죄가 자행되었다. 이에 맞서 필리핀 전역에서는 대규모 지하 게릴라 활동이 전개되었다.
1944년 미군이 필리핀 탈환 작전을 개시하면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1945년 일본이 패망하면서 필리핀은 해방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약 100만 명 이상의 필리핀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종전 후 1945년 10월 11일, 필리핀은 국제 연합의 창립 회원국이 되었다. 1946년 7월 4일, 마누엘 로하스 대통령 재임 중 마닐라 조약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달성했다.
3.5. 독립 이후 현대 (1946년 ~ 현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완전한 독립을 이룬 필리핀은 국가 재건과 민주주의 정착이라는 과제에 직면했다. 초기 공화국 시기에는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었으며, 특히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장기 집권과 1972년 계엄령 선포는 필리핀 민주주의의 암흑기로 기록된다. 마르코스 독재 정권 하에서는 인권 탄압과 부정부패가 만연했으며, 이는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1983년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 주니어 암살 사건은 마르코스 정권에 대한 반감을 극대화시켰고, 1986년 피플 파워 혁명(EDSA 혁명)으로 이어져 마르코스 독재 정권은 종식되었다. 이후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민주주의가 회복되었으나, 국채, 정부 부패, 쿠데타 시도 등 여러 도전에 직면했다.
21세기에 들어 필리핀은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 제도 강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으나, 빈부 격차, 부정부패, 마약 문제, 그리고 남부 민다나오섬 지역의 분리주의 운동 및 테러 위협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행정부(2016년~2022년)는 강력한 마약과의 전쟁을 추진했으나, 이 과정에서 초법적 살해와 인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22년에는 봉봉 마르코스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그는 경제 회복과 국가 통합을 주요 국정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3.5.1. 전후 복구와 초기 공화국 (1946년 ~ 1965년)
1946년 완전 독립을 달성한 필리핀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가를 재건하고 새로운 공화국 체제를 안정시켜야 하는 시급한 과제에 직면했다. 마누엘 로하스 대통령(1946년~1948년)을 시작으로 초기 지도자들은 미국의 경제 원조에 의존하며 국가 기반 시설 복구와 경제 회생에 힘썼다. 그러나 이 시기는 정치적 불안정 또한 두드러졌다. 공산주의 계열의 후크발라합 반란(1946년~1954년)은 심각한 국내 안보 위협이었으며, 정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라몬 막사이사이 대통령(1953년~1957년) 시기에는 후크발라합 반란이 성공적으로 진압되고 국민적 지지 속에 사회 개혁이 추진되기도 했으나,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정치적 혼란이 재현되기도 했다. 카를로스 P. 가르시아 대통령(1957년~1961년)은 "필리핀 우선 정책"을 통해 자국 산업 보호와 경제적 자립을 시도했고,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대통령(1961년~1965년)은 독립 기념일을 기존 7월 4일에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6월 12일로 변경하고, 동 북보르네오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민족주의적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이 시기 필리핀은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지주 중심의 사회 구조, 만연한 부정부패, 그리고 잦은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국가 발전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냉전이라는 국제 정세 속에서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는 유지되었지만, 동시에 자주적인 국가 발전을 모색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를 안고 있었다.
3.5.2. 마르코스 시대와 계엄령 (1965년 ~ 1986년)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필리핀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시기가 시작되었다. 집권 초기, 마르코스는 외채를 이용한 대규모 기반 시설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여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이를 바탕으로 1969년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의 통치가 길어지면서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화되었고, 정실 자본주의와 부정부패가 만연하기 시작했다.
1972년 9월 21일, 마르코스는 공산주의 위협을 명분으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사실상 칙령 통치를 시작했다. 계엄령 하에서 의회는 해산되었고, 언론은 통제되었으며, 반대파 정치인, 학생 운동가, 언론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체포, 고문, 살해되는 등 심각한 인권 유린이 자행되었다. 마르코스의 측근들이 주요 산업을 장악하는 독과점 체제가 형성되었고,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공적 자금 횡령 의혹이 제기되었다. 특히 네그로스섬의 설탕 독점은 기근 사태를 초래하기도 했다. 마르코스 초기 집권기의 대규모 차관 도입은 경제 위기를 야기했고, 1980년대 초반 경기 침체와 맞물려 1984년과 1985년에는 경제가 연간 7.3%씩 위축되었다.
1983년 8월 21일, 마르코스의 최대 정적이던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 주니어가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마르코스 정권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마르코스는 1986년 조기 대통령 선거를 실시하여 승리를 선언했으나, 광범위한 부정 선거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피플 파워 혁명(EDSA 혁명)으로 발전했고, 결국 마르코스와 그의 가족들은 하와이로 망명했으며 20년간의 독재 정권은 막을 내렸다. 마르코스 시대는 필리핀 민주주의와 인권에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그의 통치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까지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3.5.3. EDSA 혁명 이후 민주주의 이행기 (1986년 ~ 현재)

1986년 피플 파워 혁명(EDSA 혁명)으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코라손 아키노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필리핀은 민주주의 회복의 길로 들어섰다. 1987년에는 새로운 헌법이 공포되어 민주적 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아키노 정부는 막대한 국가 부채, 정부 부패, 그리고 수차례의 쿠데타 시도 등으로 인해 개혁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공산주의 반란과 모로 분리주의자들과의 군사적 갈등도 지속되었으며, 1991년 6월 피나투보 화산 폭발과 같은 자연재해도 겹쳤다.
아키노의 뒤를 이은 피델 V. 라모스 대통령(1992년~1998년)은 경제 자유화 정책을 추진하여 민영화와 규제 완화를 단행했다. 이러한 정책은 경제 성장에 기여했으나,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의 발발로 그 빛이 바랬다. 그의 후임인 조셉 에스트라다 대통령(1998년~2001년)은 공공 주택 건설을 우선시했으나, 부정부패 혐의로 인해 2001년 EDSA 혁명으로 축출되었고, 부통령이던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아로요 대통령의 9년간(2001년~2010년)의 통치는 경제 성장으로 특징지어졌으나, 2004년 대통령 선거 당시의 선거 부정 의혹을 포함한 부패와 정치 스캔들로 얼룩졌다. 베니그노 아키노 3세 대통령(2010년~2016년) 시기에는 경제 성장이 지속되었으며, 그는 선량한 통치와 투명성을 내세웠다. 아키노 3세는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MILF)과 평화 협정을 체결하여 방사모로 기본법 제정으로 이어지는 방사모로 자치구 설립의 기틀을 마련했으나, 마마사파노에서의 MILF 반군과의 총격전으로 법안 통과가 지연되기도 했다.
EDSA 혁명 이후의 통치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커지면서 2016년 선거에서는 포퓰리스트 성향의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당선되었다. 두테르테 대통령 시기에는 자유주의가 쇠퇴했지만, 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은 대체로 유지되었다. 두테르테의 우선 과제는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인프라 지출의 적극적인 증가, 방사모로 기본법 제정, 범죄 및 공산주의 반란에 대한 강화된 단속, 그리고 마약 확산을 줄였으나 초법적 살해를 야기한 마약과의 전쟁 등이었다. 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이 필리핀을 덮쳤고, 전국적인 봉쇄 조치로 인해 단기적이지만 심각한 경제 침체가 발생했다. 두테르테의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약속 하에, 마르코스의 아들 봉봉 마르코스가 두테르테의 딸 사라와 함께 출마하여 2022년 선거에서 승리했다. 마르코스의 친미 외교 정책 복원은 두테르테의 친중 정책을 뒤집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후 남중국해 영토 분쟁은 격화되었다.
4. 지리

필리핀은 약 7,641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국가로, 내륙 수역을 포함한 총면적은 약 30.00 만 km2이다. 국토는 남북으로 1850 km 뻗어 있으며, 서쪽으로는 남중국해, 동쪽으로는 필리핀해, 남쪽으로는 셀레베스해와 접한다. 필리핀은 북쪽으로는 대만, 북동쪽으로는 일본, 동쪽과 남동쪽으로는 팔라우, 남쪽으로는 인도네시아, 남서쪽으로는 말레이시아, 서쪽으로는 베트남, 북서쪽으로는 중국과 해상 경계를 접하고 있다.
필리핀의 11개 주요 섬은 루손섬, 민다나오섬, 사마르섬, 네그로스섬, 팔라완섬, 파나이섬, 민도로섬, 레이테섬, 세부섬, 보홀섬, 마스바테섬으로, 이들 섬이 국토 총면적의 약 95%를 차지한다. 필리핀의 해안선 길이는 3.63 만 km로 세계에서 5번째로 길며, 배타적 경제 수역은 226.38 만 km2에 달한다.
4.1. 지형과 지질
필리핀 군도는 대체로 산이 많으며, 고지대가 국토 총면적의 약 65%를 차지한다. 주요 산맥으로는 루손섬의 시에라 마드레 산맥, 코르디예라 중앙 산맥, 그리고 민다나오섬의 여러 산맥들이 있다. 이들 산맥 사이사이에는 비옥한 평야와 계곡이 발달해 있으며, 특히 루손섬 중부 평야는 주요 곡창 지대이다. 필리핀의 최고봉은 민다나오섬에 위치한 아포산(해발 2954 m)이다. 가장 긴 강은 북부 루손섬의 카가얀강으로 약 520 km를 흐른다. 수도 마닐라가 위치한 마닐라만은 필리핀 최대의 호수인 라구나 데 바이와 파시그강으로 연결된다.
필리핀은 태평양 불의 고리 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하여 지진 및 화산 활동이 매우 잦다. 이 지역은 지진학적으로 활발하며, 여러 방향에서 서로를 향해 수렴하는 판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매일 약 5건의 지진이 기록되지만, 대부분은 너무 약해서 느껴지지 않는다. 주요 지진으로는 1976년 모로만 지진과 1990년 루손섬 지진이 있다. 필리핀에는 23개의 활화산이 있으며, 그중 마욘산, 타알산, 칸라온산, 불루산산이 가장 많은 분화 기록을 가지고 있다. 복잡한 지질 구조와 높은 지진 활동으로 인해 필리핀에는 귀중한 광물 자원이 매장되어 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금 매장량(남아프리카 공화국 다음)과 대규모 구리 매장량, 그리고 세계 최대의 팔라듐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필리핀의 금 생산량은 21톤이었다. 기타 광물로는 크로뮴, 니켈, 몰리브데넘, 백금, 아연 등이 있다. 그러나 열악한 관리와 법 집행, 원주민 공동체의 반대, 과거의 환경 파괴 등으로 인해 이러한 자원들은 대부분 미개발 상태로 남아 있다.
4.2. 기후

필리핀은 일반적으로 덥고 습한 열대 해양성 기후를 가지고 있다. 계절은 세 가지로 나뉘는데, 3월부터 5월까지는 덥고 건조한 계절(건기), 6월부터 11월까지는 우기, 그리고 12월부터 2월까지는 시원하고 건조한 계절이다. 남서 몬순(현지어로 habagat하바갓필리핀어)은 5월부터 10월까지 지속되고, 북동 몬순(amihan아미한필리핀어)은 11월부터 4월까지 지속된다. 가장 시원한 달은 1월이고 가장 따뜻한 달은 5월이다. 필리핀 전역의 해수면 온도는 위도에 관계없이 비슷한 범위를 유지하며, 연평균 기온은 약 26.6 °C이지만, 해발 1500 m인 바기오에서는 18.3 °C이다. 필리핀의 평균 습도는 82%이다. 연 강수량은 산이 많은 동해안 지역에서는 5000 mm에 달하지만, 일부 보호된 계곡 지역에서는 1000 mm 미만이다.
필리핀 책임 수역에는 일반적으로 연간 19개의 태풍이 발생하며, 주로 7월부터 10월 사이에 발생한다. 이 중 8개 또는 9개가 상륙한다. 필리핀에 상륙한 태풍 중 가장 많은 비를 뿌린 것은 1911년 7월 14일부터 18일까지 바기오에 2210 mm의 비를 내린 태풍이었다. 필리핀은 기후 변화에 가장 취약한 세계 10개국 중 하나이다.
4.3. 생물 다양성

필리핀은 생물 다양성이 매우 풍부한 국가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발견율과 고유종 비율(67%)을 자랑한다. 필리핀에는 약 13,500종의 식물이 서식하며(그중 3,500종이 고유종), 필리핀 열대 우림에는 다양한 식물상이 존재한다. 약 3,500종의 나무, 8,000종의 현화식물, 1,100종의 양치식물, 그리고 998종의 난초 종이 확인되었다. 필리핀에는 167종의 육상 포유류(102종 고유종), 235종의 파충류(160종 고유종), 99종의 양서류(74종 고유종), 686종의 조류(224종 고유종), 그리고 20,000종 이상의 곤충이 서식한다.
산호 삼각지대 생태계의 중요한 부분인 필리핀 해역은 독특하고 다양한 해양 생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연안 어종을 자랑한다. 필리핀에는 3,200종 이상의 어류(121종 고유종)가 서식한다. 필리핀 해역은 어류, 갑각류, 굴, 해조류의 양식을 지탱한다.
필리핀 전역에는 8가지 주요 유형의 숲이 분포한다: 딥테로카르프 숲, 해변 숲, 소나무 숲, 몰라베 숲, 저지대 산지림, 고지대 산지림(또는 이끼림), 맹그로브, 그리고 초염기성암 숲이다. 공식 추산에 따르면, 2023년 필리핀의 산림 면적은 700.00 만 ha이다. 벌목은 미국 식민지 시대에 체계화되었으며, 삼림 벌채는 독립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마르코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규제되지 않은 벌목 허가로 인해 가속화되었다. 1900년 필리핀 총 육지 면적의 70%를 차지했던 산림 면적은 1999년 약 18.3%로 감소했다. 복원 노력은 미미한 성공을 거두었다.
필리핀은 생물 다양성 보존을 위한 우선 핫스팟으로, 200개 이상의 보호 지역이 있으며, 2023년 기준 779.00 만 ha로 확장되었다. 필리핀의 세 곳의 유적지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목록에 포함되었다: 술루해의 투바타하 암초, 푸에르토 프린세사 지하강 국립공원, 그리고 하미귀탄산맥 야생생물 보호구역이다.
5. 정치와 정부

필리핀은 민주주의 정부 체제를 갖춘 헌정 공화국이며,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이며, 군대의 총사령관이다. 대통령은 필리핀 국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임기는 6년 단임이다. 대통령은 내각 구성원과 다양한 국가 정부 기관 및 기관의 공무원을 임명하고 주재한다. 양원제로 운영되는 의회는 상원(임기 6년)과 하원(임기 3년)으로 구성된다. 상원 의원은 전국 단위로 선출되며, 하원 의원은 선거구와 정당 명부제를 통해 선출된다. 사법권은 대법원에 있으며, 대법원은 대법원장 1명과 14명의 연합판사로 구성된다. 이들은 사법 변호사 위원회가 제출한 후보자 명단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정부 형태를 연방제, 단원제, 또는 의원내각제로 변경하려는 시도는 라모스 행정부 이후로 계속되어 왔다. 필리핀 정치는 유명 가문, 즉 정치 왕조나 연예인들에 의해 지배되는 경향이 있으며, 정당 변경이 널리 행해진다. 부패 문제는 심각하며,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를 스페인 식민 시대의 파드리노 제도에 기인한다고 본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정치 문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그 영향력은 점차 약화되고 있으며, 헌법에는 정교분리 조항이 존재한다.
5.1. 헌법
필리핀 최초의 헌법은 1899년 공포된 말로로스 헌법으로, 아시아 최초의 공화정을 규정한 헌법이었다. 다음은 1902년의 필리핀 조직법(쿠퍼법)으로, 선거를 통해 의회가 설치되었다. 1916년의 필리핀 자치법(존스법)으로 직접선거에 의한 양원제가 되었다. 1934년의 타이딩스-맥더피 법은 독립 준비 정부 수립을 인정하고, 발족 10년 후의 독립을 약속했다.
1935년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승인과 국민의 찬성으로 1935년 필리핀 헌법이 시행되어 필리핀 자치령이 성립되었다. 이 헌법은 대통령의 권한(행정 각부뿐만 아니라 지방 자치까지 관리하는 등)이 강화된 특징을 가졌다. 1934년에 헌법 제정 의회를 소집하여 헌법 초안을 기안했으며(공화정체의 권리장전 포함), 미국 헌법의 영향이 컸다. 1943년 일본군 점령 하에 필리핀 제2공화국을 조직하는 1943년 헌법이 제정되었으나, 1946년 7월 독립 시 1935년 헌법으로 복귀했다.
1971년 6월에 헌법 제정 회의가 개최되어 전면적인 개정에 착수했다. 열띤 토론 끝에 새 헌법 초안은 1972년 11월에 승인되어 1973년 1월에 시행되었다. 이 1973년 필리핀 헌법은 대통령제 하에서의 의원내각제가 특징이다. 그러나 계엄령 하에서는 정권의 영속화가 가능했고 대통령 권한이 비약적으로 강화되는 단점이 있어 1980년과 1981년에 일부 개정되었다. 필리핀의 총리직은 1986년에 폐지되었다. 현재의 헌법은 1987년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 시절 국민투표를 통해 제정된 것으로, 삼권분립에 기초한 대통령 중심제(임기 6년, 중임 불가)를 골자로 한다.
5.2. 대통령과 행정부

필리핀의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이며,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다. 임기는 6년 단임으로, 재선은 불가능하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부를 지휘하며, 필리핀 군대의 총사령관으로서 국방을 책임진다. 대통령은 국무총리 없이 각료들을 임명하여 행정 각 부를 통할하며, 법률안 거부권, 계엄 선포권, 사면권 등의 권한을 가진다.
행정부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여 여러 부처로 구성된다. 주요 부처로는 외교부, 국방부, 재무부, 법무부, 농업부, 교육부 등이 있으며, 각 부처의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통령은 내각 회의를 주재하며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한다. 부통령 또한 국민 직선으로 선출되며, 대통령 유고 시 대통령직을 승계한다. 행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의회와의 협력과 견제가 중요하게 작용하며, 사법부의 위헌 법률 심사권 역시 행정부 권한 행사에 대한 통제 장치로 기능한다.
5.3. 입법부 (의회)
필리핀의 입법부는 양원제로, 상원(Senado)과 하원(Kapulungan ng mga Kinatawan)으로 구성된다. 상원은 총 24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전국 단위로 선출된다. 상원 의원의 임기는 6년이며, 3년마다 12명씩 개선(改選)된다. 상원은 법률안 심의, 조약 비준 동의, 고위 공직자 임명 동의 등의 권한을 가진다.
하원은 현재 316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이 중 80%는 지역구에서, 20%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통해 선출된다. 하원 의원의 임기는 3년이며, 최대 3선까지 연임할 수 있다. 하원은 법률안 발의 및 심의, 예산안 심의, 대통령 및 부통령 탄핵 소추 등의 권한을 가진다.
법률안은 상원과 하원 중 어느 한 곳에서 발의될 수 있으며, 양원을 모두 통과한 후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공포된다. 대통령이 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의회는 양원 각각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재의결하여 법률로 확정할 수 있다. 필리핀 의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입법 활동과 함께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 기능을 수행한다.
5.4. 사법부
필리핀의 사법권은 대법원(Supreme Court)과 하급 법원들에 속한다. 대법원은 대법원장 1명과 1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며, 이들은 사법·법조위원회(Judicial and Bar Council)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원은 헌법과 법률의 해석에 관한 최종적인 권한을 가지며, 모든 법원과 법관에 대한 행정적 감독권을 행사한다.
하급 법원으로는 항소법원(Court of Appeals), 조세항소법원(Court of Tax Appeals), 특별법원인 산디간바얀(Sandiganbayan, 공직자 부패 사건 전담), 그리고 각 지역의 지방법원(Regional Trial Courts), 광역지방법원(Metropolitan Trial Courts), 시법원(Municipal Trial Courts) 등이 있다. 사법부의 독립은 헌법에 의해 보장되며, 이는 민주주의 체제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된다. 법관은 신분 보장을 받으며, 외부의 부당한 간섭 없이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필리핀의 법률 체계는 주로 스페인 민법과 미국 보통법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슬람교도를 위한 샤리아 법원도 일부 지역에서 운영되고 있다.
5.5. 지방 정부
필리핀의 지방 자치 제도는 1991년 지방자치법(Local Government Code)에 의해 규정되며, 중앙 정부로부터 상당한 권한을 이양받아 운영된다. 지방 정부는 주(lalawigan), 시(lungsod), 자치 시(bayan), 그리고 바랑가이(barangay)의 계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바랑가이는 가장 작은 지방 자치 단위이다.
각 지방 정부 단위는 주민 직선으로 선출되는 장(주지사, 시장, 바랑가이 캡틴)과 지방 의회를 가진다. 이들은 해당 지역의 행정, 재정, 개발 계획 수립 및 집행에 대한 자치권을 행사한다. 주요 권한으로는 지방세 징수, 공공 서비스 제공(보건, 교육, 사회 복지 등), 지역 경제 개발 촉진, 환경 관리 등이 있다.
중앙 정부는 지방 정부에 대한 감독권을 가지며, 국가 정책과의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조정한다. 그러나 지방 자치법은 지방 정부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민다나오 이슬람 자치구(BARMM)는 다른 지방 정부보다 더 광범위한 자치권을 누리는 특별 자치 지역이다. 필리핀의 지방 자치 제도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지역 주민의 참여를 확대하며, 지역 특성에 맞는 발전을 도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5.6. 국제 관계
필리핀은 국제 연합의 창립 회원국이자 적극적인 회원국으로, 안전 보장 이사회의 비상임 이사국을 여러 차례 역임했다. 특히 동티모르 등지의 평화 유지 활동에 참여해왔다. 필리핀은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의 창립 회원국이자 핵심 회원국이며, 동아시아 정상회의, G24, 비동맹 운동의 회원국이기도 하다. 2003년부터 이슬람 협력 기구의 옵서버 지위를 획득하려 노력해왔으며, 과거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SEATO)의 회원국이었다. 천만 명이 넘는 필리핀인이 약 200개국에 거주하며 일하고 있어, 필리핀의 소프트 파워에 기여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필리핀은 경제 자유화와 자유 무역을 추구하며 외국인 직접 투자 유치를 위해 노력해왔다. 세계무역기구(WTO)와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의 회원국이다. 필리핀은 2010년 아세안 상품무역협정(ATIGA)을 체결했으며, 2023년에는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CEP)이라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ASEAN을 통해 필리핀은 중국, 인도, 일본, 한국, 호주, 뉴질랜드와 FTA를 체결했다. 또한 일본, 한국, 그리고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노르웨이, 스위스 등 4개 유럽 국가(EFTA)와 양자 FTA를 체결했다.
5.6.1. 미국과의 관계

필리핀과 미국은 경제, 안보, 그리고 인적 교류를 포함한 오랜 관계를 맺어왔다. 필리핀의 지리적 위치는 서태평양에서 미국의 도서 방위선 전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양국 간에는 1951년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으며, 이는 1999년 방문군 협정과 2016년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으로 보완되었다. 필리핀은 냉전 기간 동안 미국의 정책을 지지했으며,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2003년 필리핀은 미국의 주요 비NATO 동맹국으로 지정되었다. 두테르테 대통령 하에서는 미국과의 관계가 약화되고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이 이루어졌으나, 그의 후임인 봉봉 마르코스 대통령은 다시 친미 외교 정책으로 선회하였다. 필리핀은 외부 방위에 있어 미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미국은 남중국해를 포함하여 필리핀을 방어하겠다는 정기적인 약속을 해왔다.
5.6.2. 일본과의 관계
필리핀과 일본의 관계는 역사, 경제, 문화 등 다층적인 면에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의 필리핀 점령이라는 어두운 과거가 있었으나, 전후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주요 공적개발원조(ODA) 공여국이 되면서 경제 협력을 중심으로 관계가 발전해왔다. 현재 일본은 필리핀의 주요 교역 상대국이자 투자국 중 하나이며, 많은 필리핀 노동자들이 일본에서 일하고 있다. 문화적으로도 양국 간 교류가 활발하며, 일본 대중문화는 필리핀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최근에는 안보 분야에서도 협력이 논의되는 등 양국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부 긴장감이 존재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5.6.3. 중국 및 주변국과의 관계
필리핀은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역사적으로 교류가 많았으나, 최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인해 양국 관계는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 필리핀은 2012년 스카버러 암초(황옌다오) 대치 사건 이후 중국을 국제 중재 재판소에 제소하여 2016년 승소 판결을 받았으나, 중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이 분쟁은 필리핀의 주요 외교 안보 현안이다. 중국은 필리핀의 최대 교역 상대국 중 하나이며, 경제적 관계는 지속되고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 회원국으로서 필리핀은 역내 국가들과 긴밀한 정치, 경제, 문화적 유대를 맺고 있다. 아세안은 필리핀 외교 정책의 중요한 축이며, 경제 통합과 지역 안보 협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주변 해양 국가들과는 해상 경계 및 어업 문제 등에서 협력이 필요하며, 때로는 미묘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대만과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적 교류도 활발하나,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공식적인 외교 관계는 없다. 필리핀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주변국들과의 우호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다자주의 외교를 중시하고 있다. 최근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필리핀의 주권을 강화하려는 새로운 해양법을 비난하며, 분쟁 지역에서의 자국 이익을 수호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5.7. 군사

모병제로 운영되는 필리핀 군대(AFP)는 공군, 육군, 해군의 세 개 군으로 구성된다. 민간 치안은 내무부 및 지방 정부 산하의 필리핀 국가 경찰이 담당한다. 2022년 기준 AFP의 총 병력은 약 28만 명으로, 이 중 13만 명은 현역 군인, 10만 명은 예비군, 5만 명은 준군사조직이다.
2023년 필리핀의 군사비 지출은 4.77 억 USD(GDP의 1.4%)였다. 국방비의 대부분은 공산주의 및 무슬림 분리주의 반란과 같은 내부 위협에 대한 작전을 주도하는 필리핀 육군에 사용된다. 내부 안보에 대한 이러한 집중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 필리핀 해군 능력 저하의 한 원인이 되었다. 군 현대화 프로그램은 1995년에 시작되었으며, 2012년에 보다 강력한 국방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확장되었다.
필리핀은 오랫동안 지역 반란, 분리주의, 테러리즘과 싸워왔다. 방사모로 최대 분리주의 조직인 모로 민족 해방 전선과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은 각각 1996년과 2014년에 정부와 최종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아부 사야프나 방사모로 이슬람 자유 전사와 같은 다른 강경 단체들은 특히 술루 군도와 마긴다나오에서 외국인 납치 몸값을 요구해왔으나, 이들의 존재감은 줄어들었다. 필리핀 공산당(CPP)과 그 군사 조직인 신인민군(NPA)은 1970년대부터 정부에 대항하여 게릴라전을 벌여왔으며, 정부 관리 및 보안군에 대한 매복, 폭탄 테러, 암살 등을 자행해왔다. 1986년 민주주의 회복 이후 군사적, 정치적으로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CPP-NPA는 국민민주전선을 통해 공산주의 전선을 구축하고, 부문별 조직에 침투하며,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전투성을 결집시켜 도시 지역에서 대중의 지지를 계속 모으고 있다. 필리핀은 2024년 세계 평화 지수에서 163개국 중 104위를 차지했다.
5.8. 치안 및 인권
필리핀의 치안 상황은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며, 일부 도시 지역과 특정 농촌 지역에서는 범죄율이 높은 편이다. 주요 범죄 유형으로는 절도, 강도, 마약 관련 범죄, 그리고 일부 지역에서의 납치 및 테러 활동이 있다. 필리핀 국가 경찰(PNP)이 전국적인 치안 유지를 담당하며, 최근 몇 년간 정부는 특히 마약 범죄와의 전쟁을 강력하게 추진해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초법적 살해와 인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아 국제 사회의 우려를 낳았다.
필리핀의 인권 상황은 여러 도전 과제에 직면해 있다. 언론인, 인권 운동가, 노동 운동가, 환경 운동가 등에 대한 위협과 폭력 사건이 보고되고 있으며, 사법 시스템의 지연과 비효율성으로 인해 가해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비판이 있다. 정부는 인권 보호를 위한 노력을 강조하고 있으나, 시민 사회 단체들은 정부 정책의 실질적인 이행과 인권 상황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특히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독재 정권 하에서 자행된 인권 유린에 대한 진상 규명과 피해자 배상 문제도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되지만, 실제로는 여러 제약에 직면하는 경우가 있다.
6. 행정 구역
필리핀은 18개의 지방(Region), 82개의 주(Province), 146개의 시(City), 1,488개의 자치 시(Municipality), 그리고 42,036개의 바랑가이(Barangay)로 구성되어 있다. 방사모로를 제외한 지방들은 행정 편의를 위해 구분된다. 2020년 기준, 칼라바르손이 가장 인구가 많은 지방이었고, 국가 수도권(NCR)이 가장 인구 밀도가 높았다.
필리핀은 방사모로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구(BARMM)를 제외하고는 단일 국가이며, 분권화를 향한 조치들이 있어왔다. 1991년 법률은 일부 권한을 지방 정부에 이양했다.
6.1. 지방과 주
필리핀은 지리적, 행정적 편의를 위해 총 18개의 지방(Region)으로 나뉜다. 이 중 방사모로(BARMM)는 자치권을 가진 유일한 지방이며, 나머지 17개 지방은 주로 중앙 정부 부처의 지역 사무소 운영 및 통계 수집 등을 위한 행정 단위로 기능한다. 각 지방은 여러 개의 주로 구성되며, 필리핀에는 총 82개의 주(Province)가 있다.
주는 지방 정부의 핵심 단위로, 주지사(Governor)와 주의회(Sangguniang Panlalawigan)를 통해 자치권을 행사한다. 각 주는 다시 여러 개의 시(City)와 자치 시(Municipality)로 구성된다. 필리핀의 지방 및 주는 다음과 같다. (주 목록은 너무 길어 여기에 전부 나열하기 어려우므로 주요 지방만 언급)
- 루손섬 주요 지방: 국가 수도권(NCR, 마닐라 수도권), 일로코스 지방, 카가얀밸리 지방, 중앙루손 지방, 칼라바르손 지방, 미마로파 지방, 비콜 지방, 코르디예라 행정구(CAR)
- 비사야스 제도 주요 지방: 서비사야스 지방, 중앙비사야스 지방, 동비사야스 지방, 네그로스섬 지방(NIR)
- 민다나오섬 주요 지방: 삼보앙가반도 지방, 북민다나오 지방, 다바오 지방, 소크사르젠 지방, 카라가 지방, 방사모로 이슬람 자치구(BARMM)
각 주의 명칭과 지리적 분포는 필리핀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6.2. 주요 도시
도시 | 인구 | 소재지 |
---|---|---|
케손시티 | 약 296만 명 | 마닐라 수도권 |
마닐라 | 약 185만 명 | 마닐라 수도권 (수도) |
다바오시 | 약 178만 명 | 민다나오섬 |
칼로오칸 | 약 166만 명 | 마닐라 수도권 |
삼보앙가시티 | 약 98만 명 | 민다나오섬 |
세부시 | 약 96만 명 | 비사야스 제도 |
안티폴로 | 약 89만 명 | 리살주 (마닐라 수도권 인근) |
타기그 | 약 89만 명 | 마닐라 수도권 |
이 외에도 파시그, 카가얀데오로, 바콜로드, 일로일로시티 등 많은 도시들이 각 지역의 경제 및 문화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7. 경제

2023년 기준 필리핀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약 4357.00 억 USD로 추정되며, 세계 34위 규모이다. 신흥공업국으로서 필리핀 경제는 농업 중심에서 서비스업과 제조업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2023년 기준 노동력은 약 5,000만 명이며, 실업률은 3.1%였다. 2024년 1월 기준 총 외환 보유고는 1034.06 억 USD에 달했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은 2023년 말 60.2%로 감소하여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의 회복력을 나타냈다. 필리핀의 통화 단위는 필리핀 페소(₱ 또는 PHP)이다.
필리핀은 순수입국이자 채무국이다. 2020년 기준 주요 수출 시장은 중국, 미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였으며, 주요 수출품으로는 집적회로, 사무기기 및 부품, 전기 변압기, 절연 전선, 반도체 등이 있다. 같은 해 주요 수입 시장은 중국, 일본, 대한민국, 미국, 인도네시아였다. 주요 수출 농산물로는 코코넛, 바나나, 파인애플 등이 있으며, 세계 최대의 아바카 생산국이다. 2022년에는 세계 2위의 니켈 광석 수출국이었으며, 2020년에는 금 도금 금속 최대 수출국이자 코프라 최대 수입국이었다.
2010년경부터 연평균 6~7%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필리핀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 국가 중 하나로 부상했으며, 주로 서비스 부문에 대한 의존도 증가에 힘입었다. 그러나 지역 발전은 고르지 못하며, 특히 마닐라가 새로운 경제 성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해외 필리핀 노동자들의 송금은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하며, 2023년에는 사상 최고치인 372.00 억 USD에 달해 GDP의 8.5%를 차지했다. 필리핀은 세계 주요 업무 처리 아웃소싱(BPO) 중심지이며, 약 130만 명의 필리핀인이 BPO 부문, 주로 고객 서비스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필리핀 경제는 아시아 신흥국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는 농업국이며, 전체 인구의 약 40%가 1차 산업에 종사한다. 열대 기후로 인해 다양한 작물 재배가 가능하며, 사탕수수, 코코넛, 코프라, 마닐라삼, 담배(주로 시가용), 바나나, 망고, 파인애플 등의 생산이 활발하다. 주식으로는 쌀과 옥수수를 생산하며, 특히 쌀 생산량이 많다. 매년 약 1,500만 톤의 쌀을 생산하는 세계 8위의 쌀 생산국이지만, 자급률은 낮아 세계 최대의 쌀 수입국이기도 하다. 아시아 유수의 농업국임에도 불구하고 대량의 식량을 수입하는 상황은 필리핀의 사회 문제로 지적되며, 2007-2008년 세계 식량 가격 위기 당시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받았다. 과잉 인구와 심각한 빈곤 문제, 전근대적인 농법으로 인한 낮은 생산성, 필리핀 정부 관료의 부패, 외화 획득을 위한 수출용 상품 작물 재배 편중 등이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과거 녹색 혁명으로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쌀 대량 증산에 성공하여 쌀 자급률 100%를 달성하고 쌀 수출국이 되었으나, 1990년대 들어 화학비료 과다 사용, 수자원 고갈 등으로 생산량이 정체되거나 감소하고, 공업화로 인한 농지 감소까지 겹쳐 다시 쌀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어업은 전국적으로 널리 이루어지지만, 자급자족용 소규모 어업이 대부분이다. 풍부한 산림 자원을 보유하여 임업도 활발하며, 마호가니, 라왕목 등도 중요한 수출품이다. 미국 식민지 시대였던 1898년에는 국토의 70%가 삼림이었으나, 1968년 항공사진 조사에서는 55.5%, 1981년 조사에서는 40.8%로 감소했으며, 원시림은 전체 삼림 면적의 13%에 불과하다. 삼림 감소는 21세기 들어서도 지속되어, 2003년 256만 헥타르였던 폐쇄림(면적의 40% 이상이 수목으로 덮인 삼림)은 2010년 193만 헥타르로 줄어들었다. 전통적인 화전 농업 확대와 새로운 농지 확보를 위한 삼림 개간은 지역 주민의 빈곤 해소와 삼림 파괴라는 상충 관계에 놓여 있어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2010년대 들어 베니그노 아키노 3세 대통령은 삼림 회복을 위한 조림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2016년까지 150만 헥타르에 15억 그루의 묘목을 심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 식민 통치 하에서는 농업 정책이 실패했고, 스페인 시대의 플랜테이션 농업에 기반한 지주와 소작농 관계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지주들은 전국에 수십 명 있으며, 그들의 가족이 국토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농촌 지역에서는 절반 이상이 하루 1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최빈곤층이며, 민다나오 이슬람 지역에서는 이 비율이 75% 이상에 달한다. 정부는 이러한 빈곤 완화를 목표로 농업농촌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농업 현대화와 인프라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7.1. 주요 산업
필리핀 경제는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의 세 가지 주요 부문으로 구성된다.
- 농업: 전통적으로 필리핀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주요 작물로는 쌀, 옥수수(주식), 코코넛(세계 주요 생산국), 사탕수수,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등이 있다. 아바카(마닐라삼)는 세계 최대 생산국이며, 어업과 임업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농업 생산성은 토지 소유 구조, 낙후된 기술,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 제조업: 식품 가공, 음료, 담배, 섬유 및 의류, 화학 제품, 그리고 특히 전자제품 및 반도체 조립이 주요 분야이다. 1960년대 이후 경공업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최근에는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해 전자부품 생산이 크게 성장했다. 자동차 조립 공장과 항공기 부품 공장도 일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필리핀은 조선업에서도 상당한 규모를 자랑한다.
- 서비스업: 현재 필리핀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주요 분야는 다음과 같다.
- 업무 처리 아웃소싱(BPO): 특히 콜센터 산업이 발달하여 인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위탁 국가로 부상했다. 저렴한 인건비와 높은 영어 구사 능력이 강점이며, 수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 관광업: 아름다운 해변, 자연 경관, 역사 유적지 등을 바탕으로 중요한 외화 수입원 역할을 한다. 정부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인프라 개선에 노력하고 있다.
- 도소매업, 금융, 부동산, 운송 및 통신 등도 서비스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 해외 필리핀 노동자(OFW)의 본국 송금 역시 서비스 수지 개선 및 내수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다.
필리핀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낮고 내수 소비가 비교적 견실하며, OFW 송금과 성장하는 서비스업 덕분에 세계 경제 혼란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빈부 격차, 지역 불균형 발전, 인프라 부족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7.2. 무역 및 투자
필리핀은 전통적으로 농산물 및 광물과 같은 1차 산품을 수출하고 공업 제품을 수입하는 무역 구조를 보여왔으나, 최근에는 전자부품 및 반도체와 같은 공산품 수출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2021년 기준 필리핀의 주요 교역 상대국은 다음과 같다.
주요 수출 품목으로는 반도체 및 전자 부품, 사무기기, 전기 변압기, 의류, 코코넛 오일, 과일(바나나, 파인애플 등), 구리 제품 등이 있다. 주요 수입 품목은 원유 및 석유 제품, 산업용 기계류, 운송 장비, 철강, 화학제품 등이다.
필리핀 정부는 외국인 직접 투자(FDI)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경제자유구역(Export Processing Zones, EPZ) 운영 및 투자 인센티브 제공 등을 통해 투자 환경 개선을 꾀하고 있다. 특히 BPO(업무 처리 아웃소싱) 산업과 제조업 분야에서 외국인 투자가 활발하다. 필리핀은 세계무역기구(WTO),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원국이며, 동남아시아 국가 연합(ASEAN)을 통해 아세안 자유 무역 지대(AFTA)에 참여하고 있고, 최근에는 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RCEP)에도 가입했다. 이러한 다자간 및 양자간 무역 협정은 필리핀의 교역 및 투자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 높은 물류 비용, 복잡한 통관 절차 등은 무역 및 투자 환경의 개선 과제로 지적된다.
7.3. 기업 집단 (재벌)
필리핀 경제는 스페인 식민 시대부터 이어진 아시엔다 제도(대농장)의 영향으로 소수의 가문이 경제력을 독점하는 재벌(영어로는 conglomerate, 현지에서는 때때로 스페인어-필리핀어 혼용어로 'familia') 중심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들 기업 집단은 은행, 부동산, 소매, 통신, 에너지, 식품 및 음료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표적인 필리핀의 기업 집단으로는 다음과 같은 가문 또는 기업들이 있다.
- 아얄라 그룹 (Ayala Corporation):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기업 집단 중 하나로, 부동산 개발(아얄라 랜드), 은행(BPI), 통신(글로브 텔레콤), 물류, 에너지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한다.
- SM 그룹 (SM Investments Corporation): 헨리 시 가문이 설립한 필리핀 최대의 소매업체로, 대형 쇼핑몰(SM 슈퍼몰), 백화점, 슈퍼마켓, 은행(BDO), 부동산 개발 등 광범위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다.
- 산 미겔 코퍼레이션 (San Miguel Corporation): 원래 맥주 회사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식품 및 음료, 포장, 연료 및 석유, 발전, 인프라 등 필리핀 최대의 다각화된 대기업 집단 중 하나로 성장했다.
- JG 서밋 홀딩스 (JG Summit Holdings): 존 고콩웨이 가문이 이끄는 기업으로, 항공(세부 퍼시픽), 식품 및 음료(유니버설 로비나), 석유화학, 부동산, 은행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다.
- 루시오 탄 그룹 (LT Group): 루시오 탄이 이끄는 기업 집단으로, 담배(포춘 토바코), 주류(탄두아이 럼), 은행(PNB), 항공(과거 필리핀 항공 소유), 부동산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 메트로뱅크 그룹 (Metrobank Group): 조지 티 가문이 설립한 주요 금융 그룹으로, 은행업을 중심으로 보험, 자동차,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이들 기업 집단은 필리핀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동시에, 때로는 경제력 집중과 시장 독과점, 정치적 영향력 행사 등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이들의 사업 확장과 경영 전략은 필리핀 경제의 향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7.4. 해외 노동자와 송금
해외 필리핀 노동자(Overseas Filipino Workers, OFW)는 필리핀 경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높은 실업률과 낮은 임금 수준으로 인해 많은 필리핀인들이 더 나은 경제적 기회를 찾아 해외로 이주하여 일하고 있으며, 이들은 건설, 가사 노동, 간호, 해운, 엔지니어링, 정보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
OFW들이 본국으로 보내는 송금액은 필리핀 경제의 주요 외화 수입원 중 하나이며, 국가 국내총생산(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2023년 기준 OFW 송금액은 372.00 억 USD에 달해 GDP의 약 8.5%를 기록했다. 이 송금액은 필리핀의 국제수지 개선, 페소화 가치 안정, 그리고 국내 소비 지출 증대에 크게 기여하여 내수 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OFW의 주요 파견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국가, 미국, 캐나다, 홍콩, 싱가포르, 일본, 대한민국 등 아시아 국가, 그리고 유럽 및 호주 등 전 세계에 걸쳐 있다.
필리핀 정부는 OFW를 "현대의 영웅"으로 칭하며 이들의 권익 보호와 지원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나, 해외 노동자들은 여전히 열악한 노동 환경, 임금 체불, 학대, 차별 등의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또한, 가족 해체, 자녀 양육 문제 등 사회적 비용도 수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FW와 그들의 송금은 필리핀 경제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다.
7.5. 과학 기술

필리핀은 농업 연구 개발에 대한 지출이 상대적으로 낮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에서 가장 큰 농업 연구 시스템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필리핀은 쌀, 코코넛, 바나나 등 새로운 작물 품종을 개발해왔다. 연구 기관으로는 필리핀 쌀 연구소와 국제미작연구소(IRRI)가 있다.
필리핀 우주국(PhilSA)은 국가의 우주 프로그램을 관리하며, 필리핀은 1996년 첫 번째 위성을 구매했다. 필리핀 최초의 초소형 위성인 디와타-1은 2016년 미국 시그너스 우주선에 실려 발사되었다.
필리핀은 휴대전화 사용자 집중도가 높으며, 모바일 상거래 수준도 높다. 문자 메시지는 대중적인 의사소통 수단으로, 2007년 필리핀은 하루 평균 10억 건의 SMS 메시지를 발송했다. 필리핀 통신 산업은 20년 이상 PLDT-글로브 텔레콤 복점 체제였으나, 2021년 디토 텔레커뮤니티의 진입으로 통신 서비스가 개선되었다. 정부는 과학 기술 발전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육성에도 힘쓰고 있다. 과학기술부(DOST)가 관련 정책 수립 및 연구 개발 지원의 중심 역할을 한다.
7.6. 관광

필리핀은 기후와 낮은 생활비 덕분에 외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은퇴 목적지이다. 필리핀의 주요 관광 명소는 수많은 해변이며, 또한 다이빙 애호가들에게 최고의 목적지 중 하나이다. 관광 명소로는 2012년 트래블 + 레저지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섬 보라카이, 팔라완의 코론과 엘니도, 세부, 시아르가오, 보홀 등이 있다.
관광업은 2021년 필리핀 GDP의 5.2%를 차지했으며(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12.7%보다 낮음), 2019년에는 570만 개의 일자리를 제공했다. 필리핀은 2023년에 545만 명의 외국인 방문객을 유치했으며, 이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기록인 826만 명보다 30% 낮은 수치이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대한민국(26.4%), 미국(16.5%), 일본(5.6%), 호주(4.89%), 중국(4.84%)에서 왔다. 정부는 관광 산업을 국가 경제의 중요한 성장 동력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인프라 개선, 관광 상품 다양화, 국제적인 홍보 강화 등을 통해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8. 사회 기반 시설
필리핀의 사회 기반 시설은 국가 발전에 필수적인 교통망, 에너지 공급, 정보 통신, 상하수도 및 위생 시설 등을 포함하며, 정부는 이러한 시설의 현황 개선과 확충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지리적 특성, 재정적 제약,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8.1. 교통

필리핀의 교통은 도로, 항공, 해운, 철도 등 다양한 수단으로 이루어진다. 도로는 교통의 주요 형태로, 인원의 98%와 화물의 58%를 운송한다. 2018년 12월 기준, 필리핀에는 21.05 만 km의 도로가 있다. 국토의 육상 교통 중추는 루손섬, 사마르섬, 레이테섬, 민다나오섬을 연결하는 팬필리핀 고속도로이다. 섬 간 운송은 919 km의 강력한 공화국 항해 고속도로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17개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와 페리 노선을 통합한 것이다. 지프니는 대중적이고 상징적인 대중교통 수단이며, 기타 대중 육상 교통 수단으로는 버스, UV 익스프레스, TNVS, 필캡, 택시, 삼륜차 등이 있다. 마닐라와 수도로 향하는 간선 도로의 교통 체증은 심각한 문제이다.
과거에는 더 널리 사용되었으나, 필리핀의 철도 교통은 현재 메트로 마닐라 내 및 라구나주와 케손주의 여객 수송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비콜 지방에 짧은 구간이 있다. 2019년 기준 필리핀의 철도 총연장은 79 km에 불과했으나, 이를 244 km로 확장할 계획이다. 도로 혼잡을 줄이기 위해 화물 철도 부활도 계획 중이다.
2022년 기준 필리핀에는 90개의 국영 공항이 있으며, 이 중 8개가 국제 공항이다. 이전 마닐라 국제공항으로 알려진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은 승객 수가 가장 많다. 2017년 국내 항공 시장은 필리핀의 국책 항공사이자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상업 항공사인 필리핀 항공과 필리핀의 대표적인 저비용 항공사인 세부퍼시픽항공이 주도했다.
필리핀 전역에서는 다양한 보트가 사용되며, 대부분은 방카로 알려진 이중 아웃리거 선박이다. 현대 선박은 통나무 대신 합판을, 돛 대신 모터 엔진을 사용하며, 어업 및 섬 간 이동에 사용된다. 필리핀에는 1,800개 이상의 항구가 있으며, 이 중 주요 항구인 마닐라항(필리핀의 주요 항구이자 가장 분주한 항구), 바탕가스, 수빅만, 세부, 일로일로, 다바오, 카가얀데오로, 제너럴산토스, 삼보앙가는 아세안 교통 네트워크의 일부이다.
8.2. 에너지

2021년 필리핀의 총 설비 발전 용량은 26,882 MW였다. 이 중 43%는 석탄, 14%는 석유, 14%는 수력 발전, 12%는 천연가스, 7%는 지열에서 생산되었다. 필리핀은 미국과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지열 에너지 생산국이다. 필리핀에서 가장 큰 댐은 팡가시난주의 아그노강에 있는 1.2 km의 산로케댐이다. 1990년대 초 팔라완 연안에서 발견된 말람파야 가스전은 필리핀의 수입 석유 의존도를 낮추었으며, 루손섬 에너지 수요의 약 40%, 국가 전체 에너지 수요의 약 30%를 공급한다.
필리핀에는 루손, 비사야스, 민다나오에 각각 하나씩, 총 세 개의 전력망이 있다. 필리핀 국영 송전 공사(NGCP)는 2009년부터 국가의 전력망을 관리하며, 필리핀 전역의 섬에 가공 송전선을 제공한다. 소비자에 대한 전력 배분은 민간 소유 배전 유틸리티와 정부 소유 전기 협동조합이 담당한다. 2021년 말 기준, 필리핀의 가구 전력화 수준은 약 95.41%였다.
원자력 에너지 활용 계획은 1973년 석유 위기에 대응하여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초기인 197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필리핀은 1984년 바탄주에 동남아시아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를 완공했다. 마르코스 축출 이후의 정치적 문제와 1986년 체르노빌 재해 이후의 안전 문제로 인해 이 발전소는 가동되지 못했으며, 가동 계획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8.3. 상하수도 및 위생

메트로 마닐라 이외 지역의 상하수도 공급은 시 또는 마을의 지방 수도 관리국을 통해 정부가 제공한다. 메트로 마닐라는 마닐라 워터와 마이닐라드 워터 서비스가 담당한다. 국내용 얕은 우물을 제외하고, 지하수 사용자는 국가 수자원 위원회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2022년 총 취수량은 2021년 890.00 억 m3에서 910.00 억 m3로 증가했다.
필리핀의 대부분 하수는 정화조로 흘러 들어간다. 2015년, 상하수도 및 위생 공동 감시 프로그램은 필리핀 인구의 74%가 개선된 위생 시설에 접근할 수 있으며, 1990년에서 2015년 사이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2016년 기준 필리핀 가구의 96%가 개선된 식수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92%의 가구가 위생적인 화장실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화장실 시설을 적절한 하수 시스템에 연결하는 것은 특히 농촌 및 도시 빈곤 지역 사회에서 여전히 매우 미흡하다.
8.4. 정보 통신
필리핀은 높은 휴대전화 보급률과 활발한 모바일 상거래 이용률을 보인다. 문자 메시지(SMS)는 대중적인 의사소통 수단으로, 2007년에는 하루 평균 10억 건의 SMS가 발송될 정도였다. 필리핀의 통신 산업은 PLDT와 글로브 텔레콤의 양강 구도가 20년 이상 지속되었으나, 2021년 디토 텔레커뮤니티가 시장에 진입하면서 통신 서비스 경쟁이 촉진되고 품질 개선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인터넷 보급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2021년 초 기준으로 필리핀 인구의 67%(약 7,391만 명)가 인터넷을 이용하며,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통해 접속한다. 정부는 디지털 전환을 위한 국가 전략을 추진하며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 확충과 관련 산업 육성에 힘쓰고 있다. 정보통신기술부(DICT)가 이러한 정책을 총괄한다. 소셜 미디어 이용률 또한 매우 높아, 뉴스 소비 및 정보 공유의 주요 채널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디지털 격차 해소와 사이버 보안 강화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9. 인구
2020년 5월 1일 기준, 필리핀의 인구는 109,035,343명이었다. 국가 인구의 60% 이상이 해안 지대에 거주하며, 2020년에는 54%가 도시 지역에 거주했다. 수도인 마닐라와 필리핀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인 케손시티는 메트로 마닐라에 위치한다. 약 1,348만 명(필리핀 인구의 약 12.4%)이 필리핀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대도시권이자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메트로 마닐라에 거주한다. 1948년부터 2010년까지 필리핀의 인구는 1,900만 명에서 9,200만 명으로 거의 5배 증가했다.
필리핀의 중위 연령은 25.3세이며, 인구의 63.9%가 15세에서 64세 사이이다. 필리핀의 연평균 인구 증가율은 감소하고 있으나, 인구 증가를 더욱 억제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논란이 되어 왔다. 필리핀은 빈곤율을 1985년 49.2%에서 2021년 18.1%로 낮추었으며, 소득 불균형은 2012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2024년 추정 인구는 약 1억 1,416만 명으로 세계 12위 수준이다.
9.1. 민족
필리핀은 외국의 영향과 군도의 물과 지형에 의한 분할로 인해 상당한 민족적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202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필리핀의 주요 민족 집단은 타갈로그족(26.0%), 비사야족(세부아노족, 힐리가이논족, 와라이족 제외)(14.3%), 일로카노족과 세부아노족(각각 8%), 힐리가이논족(7.9%), 비콜라노족(6.5%), 와라이족(3.8%) 순이었다. 필리핀의 원주민은 110개의 민족언어학적 집단으로 구성되며, 2020년 기준 총인구는 1,556만 명이었다. 이들은 이고로트족, 루마드족, 망얀족, 그리고 팔라완의 원주민을 포함한다.
네그리토는 이 섬들의 초기 거주민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 소수 원주민 정착민은 오스트랄로이드 집단으로, 아프리카에서 호주로 향한 최초의 인류 이동의 잔존 세력이며, 아마도 이후의 이주 물결에 의해 밀려났을 것이다. 일부 필리핀 네그리토는 데니소바인 혼혈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필리핀 민족은 일반적으로 여러 동남아시아 민족 집단에 속하며, 언어학적으로는 말레이폴리네시아어파를 사용하는 오스트로네시아족으로 분류된다. 오스트로네시아 인구의 기원은 불확실하지만, 대만 원주민의 친척들이 그들의 언어를 가져와 이 지역 기존 인구와 혼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루마드족과 사마-바자우족은 동남아시아 본토의 오스트로아시아어족 및 믈라브리어를 사용하는 루아족과 조상적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 파푸아뉴기니에서 동부 인도네시아와 민다나오로의 서쪽 확장은 블라안족과 상이르어에서 감지되었다.
스페인 제국 시대에는 특히 스페인령 아메리카에서 이민자들이 필리핀으로 도착했다. 2016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프로젝트 연구 결과, 필리핀 군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비율로 유전적 표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53% 동남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36% 동아시아, 5% 남유럽, 3% 남아시아, 그리고 2% 아메리카 원주민(라틴 아메리카에서 유래).
혼혈 후손은 메스티소 또는 tisoy티소이필리핀어로 알려져 있으며,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는 주로 중국계 메스티소( Mestizos de Sangley메스티소스 데 상글레이스페인어), 스페인계 메스티소( Mestizos de Español메스티소스 데 에스파뇰스페인어) 및 그 혼혈( Tornatrás토르나트라스스페인어)로 구성되었다. 현대의 중국계 필리핀인은 필리핀 사회에 잘 통합되어 있다. 주로 푸젠성에서 온 이민자들의 후손인 순수 중국계 필리핀인은 미국 식민지 시대(20세기 초)에 약 135만 명으로 추정되었다. 한편, 약 2,280만 명(필리핀 인구의 약 20%)이 식민지 이전, 식민지 시대, 그리고 20세기 중국 이주민으로부터 부분적인 중국계 혈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히스패닉 시대(18세기 후반)의 공물 인구 조사에서는 혼혈 스페인계 필리핀인이 전체 시민의 중간 비율(약 5%)을 차지했다. 한편, 멕시코계 필리핀인은 더 적은 비율(2.33%)을 차지했다. 2023년 기준 약 30만 명의 미국 시민이 필리핀에 거주하고 있으며, 최대 25만 명의 아메라시안이 앙헬레스, 마닐라, 올롱가포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기타 중요한 비토착 소수 민족으로는 인도인과 아랍인이 있다. 일본계 필리핀인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의 박해를 피해 도망친 기독교인(기리시탄)이 포함된다.
9.2. 언어
에스놀로그는 필리핀에 186개의 언어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그중 182개는 현재 사용되는 언어이고 나머지 4개는 더 이상 알려진 화자가 없다. 대부분의 토착 언어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한 갈래인 말레이폴리네시아어파의 필리핀어군에 속한다. 스페인어 기반의 크리올어 변종들, 통칭 차바카노어도 사용된다. 많은 필리핀 네그리토 언어들은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문화 동화 과정에서도 살아남은 고유한 어휘를 가지고 있다.
필리핀어와 영어는 필리핀의 공용어이다. 타갈로그어의 표준화된 형태인 필리핀어는 주로 메트로 마닐라에서 사용된다. 필리핀어와 영어는 정부, 교육, 인쇄물, 방송 매체, 사업 분야에서 사용되며, 종종 제3의 지역 언어와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타갈로그어와 영어를 혼용하는 타글리시가 일반적이다. 필리핀 헌법은 스페인어와 아랍어를 자발적이고 선택적인 기준으로 장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9세기 후반에 널리 사용되던 링구아 프랑카였던 스페인어는 사용이 크게 감소했지만, 스페인어 차용어는 여전히 필리핀 언어에 남아 있다. 아랍어는 주로 민다나오섬 이슬람 학교에서 가르친다.
2020년 기준 가정에서 주로 사용되는 상위 언어는 타갈로그어, 비사야어, 힐리가이논어, 일로카노어, 세부아노어, 비콜어이다. 19개의 지역 언어가 교육 매체로서 보조 공용어 역할을 한다:
- 아클라논어
- 비콜어
- 세부아노어
- 차바카노어
- 힐리가이논어
- 이바나그어
- 일로카노어
- 이바탄어
- 카팜팡안어
- 키나라이아어
- 마긴다나오어
- 마라나오어
- 팡가시난어
- 삼발어
- 수리가오논어
- 타갈로그어
- 타우수그어
- 와라이어
- 야칸어
쿠요논어, 이푸가오어, 이트바야트어, 칼링가어, 카마요어, 칸카나에이어, 마스바테뇨어, 롬블로마논어, 마노보어, 그리고 여러 비사야 언어를 포함한 기타 토착 언어들이 각자의 주에서 사용된다. 필리핀 수화는 국가 수화이며, 청각 장애인 교육 언어이다.
9.3. 종교

필리핀은 세속 국가이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대다수의 필리핀인들은 종교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무종교 비율은 매우 낮다. 기독교가 지배적인 종교로, 인구의 약 89%를 차지한다. 2013년 기준 필리핀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로마 가톨릭 인구를 보유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 가장 큰 기독교 국가이다. 2020년 인구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인구의 78.8%가 로마 가톨릭을 신봉하며, 다른 기독교 교파로는 이글레시아 니 그리스도이글레시아 니 크리스토타갈로그어, 필리핀 독립 교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등이 있다. 개신교도는 2010년 기준 인구의 약 5~7%를 차지했다. 필리핀은 전 세계에 많은 기독교 선교사를 파견하며, 외국인 사제와 수녀를 위한 훈련 센터이기도 하다.
이슬람교는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종교로, 2020년 인구 조사에서 인구의 6.4%를 차지했다. 대부분의 무슬림은 민다나오와 인근 섬에 거주하며, 대부분 샤피이파의 수니파 이슬람을 따른다.
인구의 약 0.2%는 토착 신앙을 따르며, 이들의 관습과 민간 신앙은 종종 기독교 및 이슬람과 혼합된다. 불교는 인구의 약 0.04%가 신봉하며, 주로 중국계 필리핀인들이 믿는다.
10. 보건
필리핀의 보건 의료는 국가 및 지방 정부에서 제공하지만, 민간 지불이 의료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2022년 1인당 의료 지출은 1.01 만 PHP였으며, 의료 지출은 국가 GDP의 5.5%였다. 2023년 의료 예산 배정액은 3349.00 억 PHP였다. 2019년 두테르테 대통령이 보편적 건강 관리법을 제정하면서 모든 필리핀인이 국민 건강 보험 프로그램에 자동 가입하게 되었다. 2018년부터 여러 국영 병원에 원스톱 상점인 말라사킷 센터가 설치되어 빈곤 환자에게 의료 및 재정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2023년 기준 필리핀의 평균 기대 수명은 70.48세(남성 66.97세, 여성 74.15세)이다.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필리핀인의 수용도가 높아지면서 의약품 접근성이 개선되었다. 2021년 필리핀의 주요 사망 원인은 허혈성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 코로나19, 종양, 당뇨병이었다. 전염병은 주로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와 관련이 있다. 필리핀에는 100만 명의 활동성 결핵 환자가 있으며, 이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유병률이다.
필리핀에는 1,387개의 병원이 있으며, 이 중 33%가 국영이다. 23,281개의 바랑가이 보건소, 2,592개의 농촌 보건소, 2,411개의 분만실, 659개의 진료소가 전국적으로 1차 진료를 제공한다. 1967년부터 필리핀은 세계 최대의 간호사 공급국이 되었다. 간호 졸업생의 70%가 해외로 나가 일하기 때문에 숙련된 의료진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0.1. 의료 체계
필리핀의 의료 체계는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이 혼재되어 운영된다. 공공 의료 기관으로는 보건부(DOH) 산하의 국립 병원, 지방 정부가 운영하는 주립 및 시립 병원, 그리고 바랑가이 단위의 보건소(Rural Health Units, Barangay Health Stations)가 있다. 이들은 주로 저소득층과 농촌 지역 주민들에게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민간 의료 기관은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으며, 보다 높은 수준의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비용이 비싼 편이다.
의료 인력으로는 의사, 간호사, 약사, 의료 기술자 등이 있으며, 특히 간호 인력은 해외로 많이 진출하여 국제적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의료 인력 부족, 특히 농촌 및 낙후 지역에서의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국민 건강 보험 제도인 필헬스(PhilHealth)는 모든 필리핀 국민에게 기본적인 의료 보장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가입자는 공공 및 민간 의료 기관에서 일정 부분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보장 범위와 지원 수준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의료 서비스 전달 체계는 1차(보건소), 2차(일반 병원), 3차(전문 병원)로 구분되나, 지역 간 의료 자원 불균형으로 인해 접근성에 차이가 크다. 정부는 보편적 건강 보장(Universal Health Care)을 목표로 의료 시스템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10.2. 주요 건강 문제
필리핀은 다양한 건강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이는 감염성 질환과 비감염성 질환 모두를 포함한다.
- 주요 사망 원인: 2021년 기준 필리핀의 주요 사망 원인은 허혈성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뇌졸중), 코로나19, 각종 악성 신생물(암), 당뇨병 순이었다. 이러한 비감염성 질환(NCDs)은 생활 습관 변화, 고령화 등과 관련하여 증가하는 추세이다.
- 감염성 질환: 결핵은 여전히 필리핀의 주요 공중 보건 문제 중 하나로, 높은 유병률을 보이고 있다. 뎅기열, 말라리아, 장티푸스, 급성 호흡기 감염 등도 흔한 감염병이다. HIV/AIDS 감염자 수도 증가하는 추세여서 우려를 낳고 있다.
- 영양 문제: 특히 아동과 임산부의 영양실조(저체중, 발육 부진)는 심각한 문제이다. 동시에 과체중 및 비만 인구도 증가하고 있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 미량 영양소 결핍(철분, 요오드, 비타민 A 등)도 널리 퍼져 있다.
- 모자 보건: 영아 사망률과 모성 사망률은 과거에 비해 개선되었으나, 여전히 다른 중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안전한 분만 환경과 산전후 관리 접근성 향상이 필요하다.
- 정신 건강: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고 관련 서비스가 부족하여 많은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 환경 관련 건강 문제: 대기오염, 수질오염, 위생 시설 부족 등으로 인한 건강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도시 빈민 지역에서 이러한 문제가 두드러진다.
정부는 이러한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공중 보건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으나, 제한된 예산, 지역 간 의료 접근성 불균형, 건강에 대한 인식 부족 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11. 교육

필리핀의 초등 및 중등 교육은 초등 6년, 중학교 4년, 고등학교 2년으로 구성된다. 정부가 제공하는 공교육은 초등 및 중등 단계와 대부분의 공립 고등 교육 기관에서 무료이다. 재능 있는 학생들을 위한 과학 고등학교는 1963년에 설립되었다. 정부는 기술 교육 및 기술 개발청을 통해 기술-직업 훈련 및 개발을 제공한다. 2004년 정부는 문해율 향상을 위해 학교 밖 아동, 청소년, 성인을 위한 대안 교육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마드라사는 같은 해 주로 민다나오 무슬림 지역을 중심으로 16개 지역에서 교육부 산하로 주류화되었다. 1,500개 이상의 가톨릭 학교와 고등 교육 기관은 교육 시스템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2019년 기준 필리핀에는 1,975개의 고등 교육 기관이 있으며, 이 중 246개는 공립, 1,729개는 사립이다. 공립 대학은 비종교적이며, 주로 주립 또는 지방 정부 투자로 분류된다. 국립 대학교는 8개 학교로 구성된 필리핀 대학교(UP) 시스템이다. 필리핀의 상위권 대학으로는 필리핀 대학교 딜리만, 아테네오 데 마닐라 대학교, 데 라 살 대학교, 산토 토마스 대학교 등이 있다.
2019년 기준, 필리핀의 5세 이상 기본 문해율은 93.8%였고, 10세에서 64세 사이의 기능적 문해율은 91.6%였다. 국가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교육 부문에는 2023년 예산 5.27 조 PHP 중 9009.00 억 PHP가 배정되었다. 2023년 기준, 필리핀에는 필리핀 국립도서관 산하의 1,640개 공공 도서관이 있다.
11.1. 교육 제도
필리핀의 교육 제도는 K-12 프로그램을 통해 유치원(Kindergarten), 초등 교육(Elementary Education, 6년), 중등 교육(Secondary Education)으로 구성된다. 중등 교육은 다시 중학교(Junior High School, 4년)와 고등학교(Senior High School, 2년)로 나뉜다. 따라서 기본적인 학제는 총 13년 과정이다.
- 유치원(Kindergarten): 만 5세 아동을 대상으로 하며, 의무 교육 과정의 일부이다.
- 초등 교육(Elementary Education): 6년 과정으로, 기초 학문 능력과 가치관 함양을 목표로 한다.
- 중학교(Junior High School): 4년 과정으로, 초등 교육을 심화하고 다양한 학문 분야를 소개한다.
- 고등학교(Senior High School): 2년 과정으로, 학생들의 진로에 따라 학문(Academic), 기술-직업-생계(Technical-Vocational-Livelihood), 스포츠, 예술 및 디자인 등 다양한 트랙을 선택하여 심화 학습을 한다.
공립학교에서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무상 교육이 제공된다. 사립학교도 다수 존재하며, 종교 재단이 운영하는 학교(특히 가톨릭 학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등 교육은 대학교(University)와 단과대학(College)에서 이루어지며,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제공한다. 기술 교육 및 기능 개발청(TESDA)은 기술-직업 교육 및 훈련(TVET) 프로그램을 관장하여 실무 중심의 인력 양성에 힘쓰고 있다.
주요 교육 개혁 정책으로는 2013년에 전면 시행된 K-12 프로그램이 있으며, 이는 필리핀 교육 시스템을 국제 표준에 맞추고 졸업생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교육부(DepEd)가 기본 교육을, 고등교육위원회(CHED)가 고등 교육을 담당한다.
11.2. 문해율 및 고등 교육
2019년 기준 필리핀의 5세 이상 인구의 기본 문해율은 93.8%로 높은 편이며, 10세에서 64세 사이 인구의 기능적 문해율은 91.6%로 보고되었다. 이는 필리핀 정부의 지속적인 교육 투자와 교육 기회 확대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필리핀의 고등 교육은 다양한 공립 및 사립 대학교와 단과대학에서 이루어진다. 2019년 기준 1,975개의 고등 교육 기관이 있으며, 이 중 사립 기관이 다수를 차지한다. 주요 국립 대학으로는 필리핀 대학교(UP) 시스템이 있으며, 각 지역의 중심 도시에도 주립 대학들이 설립되어 있다. 사립 대학 중에서는 산토 토마스 대학교, 아테네오 데 마닐라 대학교, 데 라 살 대학교 등이 오랜 역사와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한다.
기술 교육 및 기능 개발청(TESDA)은 기술-직업 교육 및 훈련(TVET)을 담당하며, 다양한 분야의 실무 기술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필리핀은 국제 교육 협력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많은 필리핀 학생들이 해외로 유학을 가고, 동시에 외국인 학생들도 필리핀에서 수학하고 있다. 특히 영어 교육 프로그램이 발달하여 비영어권 국가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2017년에는 공립 대학 및 일부 인가된 사립 대학의 학부 과정 등록금을 면제하는 법안이 통과되어 고등 교육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12. 문화

필리핀 문화는 지리적 단절성으로 인해 강화된 상당한 문화적 다양성을 특징으로 한다. 스페인과 미국의 문화는 오랜 식민 통치의 결과로 필리핀 문화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민다나오와 술루 군도의 문화는 스페인의 영향이 제한적이었고 인근 이슬람 지역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기 때문에 뚜렷하게 발전했다. 이고로트족과 같은 원주민 집단은 스페인에 저항함으로써 식민지 이전의 관습과 전통을 보존해왔다. 그러나 민족 정체성은 19세기에 공유된 국가 상징과 문화적, 역사적 시금석을 통해 부흥했다.
히스패닉 유산으로는 가톨릭의 지배와 스페인식 이름 및 성씨의 보급이 있으며, 이는 1849년 성씨의 체계적인 배포와 스페인식 작명 관습 시행을 명령한 칙령의 결과이다. 많은 지명 또한 스페인어에서 유래했다. 현대 필리핀 문화에 대한 미국의 영향은 영어 사용과 필리핀인들의 패스트푸드, 미국 영화 및 음악 소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필리핀의 공휴일은 일반 공휴일과 특별 공휴일로 분류된다. 축제는 주로 종교적이며, 대부분의 도시와 마을에는 이러한 축제(보통 수호성인을 기리기 위한)가 있다. 잘 알려진 축제로는 아티-아티한, 디낙양, 모리오네스, 시눌로그, 그리고 5월에 열리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한 달간의 헌신인 플로레스 데 마요 등이 있다. 필리핀의 크리스마스 시즌은 빠르면 9월 1일부터 시작되며, 성주간은 기독교인들에게 엄숙한 종교적 기념일이다.
12.1. 가치관과 사회 규범
필리핀의 가치관은 주로 혈연, 의무, 우정, 종교(특히 기독교), 상업에 기반한 개인적 유대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가치관은 파키키사마파키키사마필리핀어(조화로운 관계 유지)를 중심으로 하며, 주로 집단에 의한 수용 욕구에 의해 동기 부여된다. 우탕 나 loob필리핀어(은혜의 빚)을 통한 상호성은 중요한 필리핀 문화적 특성이며, 내면화된 빚은 결코 완전히 갚을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가치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주요 제재는 hiya히야필리핀어(수치심)와 amor propio아모르 프로피오스페인어(자존감) 상실이라는 개념이다.
가족은 필리핀 사회의 중심이며, 충성심, 긴밀한 관계 유지, 연로한 부모 봉양과 같은 규범은 필리핀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권위와 연장자에 대한 존경은 중요하게 여겨지며, mano마노필리핀어와 같은 몸짓과 경칭인 po포필리핀어와 opo오포필리핀어, 그리고 kuya쿠야필리핀어(형) 또는 ate아테필리핀어(언니/누나)를 통해 표현된다. 기타 필리핀 가치관으로는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 현재에 대한 비관주의, 타인에 대한 관심, 우정과 친근함, 환대, 종교성, 자신과 타인(특히 여성)에 대한 존중, 그리고 성실함 등이 있다.
12.2. 예술과 건축

필리핀 예술은 토착 민속 예술, 동아시아 및 고전 전통을 결합한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는 주로 회화와 조각을 통해 가톨릭을 전파하는 데 예술이 사용되었다. 필리핀에서 기록된 최초의 조각가는 후안 데 로스 산토스(1590년~1660년)로, 그는 제단화 제작으로 유명하다. 1821년 필리핀 회화의 아버지인 다미안 도밍고는 비논도에 미술 학교인 아카데미아 데 디부호를 열었다. 스페인 식민 통치 기간의 다른 예술가로는 호세프 루시아노 단스, 호세 호노라토 로사노, 마리아노 아순시온과 같은 화가들과 이사벨로 탐핑코와 크리스풀로 혹손과 같은 조각가들이 있다. 필리핀을 주목하게 한 작품을 남긴 예술가로는 후안 루나와 펠릭스 레스렉시온 히달고가 있다. 페르난도 아모르솔로는 미국 식민지 시대에 필리핀 회화를 지배했으며, 필리핀 시골의 전원 풍경으로 유명하다. 현대 필리핀 예술의 아버지로 알려진 빅토리오 에다데스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필리핀에서 모더니즘을 대중화했다.
12.2.1. 전통 및 식민지 건축

필리핀 전통 건축에는 두 가지 주요 모델이 있다: 토착적인 바하이 쿠보바하이 쿠보필리핀어와 스페인 통치 하에 발전한 바하이 나 바토바하이 나 바토필리핀어이다. 바타네스주와 같은 일부 지역은 기후로 인해 약간 다르다. 석회암이 건축 자재로 사용되었고, 집은 태풍에 견딜 수 있도록 지어졌다.
스페인 건축은 중앙 광장 또는 plaza mayor플라사 마요르스페인어를 중심으로 한 도시 설계에 흔적을 남겼지만, 그 건물들 중 다수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손상되거나 파괴되었다. 몇몇 필리핀 교회는 지진에 견디기 위해 바로크 건축을 적용하여 지진 바로크 양식으로 발전했다. 4개의 바로크 양식 교회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공동 등재되었다. 필리핀 여러 지역의 스페인 식민지 요새( fuerzas푸에르사스스페인어)는 주로 선교사 건축가들이 설계하고 필리핀 석공들이 건설했다. 일로코스수르주의 비간은 히스패닉 스타일의 주택과 건물로 유명하다.
미국 통치는 정부 건물과 아르데코 극장 건설에 새로운 건축 양식을 도입했다. 미국 시대에는 가발돈 학교 건물 건설이 시작되었고, 다니엘 번햄의 건축 설계와 마스터 플랜을 사용한 일부 도시 계획이 마닐라와 바기오 일부에서 이루어졌다. 번햄 계획의 일부는 그리스 또는 신고전주의 건축을 연상시키는 정부 건물 건설이었다. 스페인 및 미국 시대의 건물은 일로일로에서, 특히 칼레 레알에서 볼 수 있다.
12.2.2. 시각 예술
필리핀의 시각 예술은 풍부한 역사와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반영하며 발전해왔다. 전통적으로는 목각, 직조, 도자기 등의 공예가 발달했으며, 각 지역의 고유한 문양과 기술이 특징적이다. 스페인 식민 시대에는 종교 미술이 주를 이루어 교회 건축과 장식, 성상 조각 등이 활발히 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서양 미술 기법이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다미안 도밍고와 같은 초기 화가들이 등장했다.
19세기 후반에는 후안 루나와 펠릭스 레스렉시オン 히달고와 같은 화가들이 유럽에서 명성을 얻으며 필리핀 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이들은 서양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양식을 수용하면서도 필리핀의 현실과 역사를 담아내려는 시도를 보였다. 미국 식민 시대에는 페르난도 아모르솔로가 등장하여 필리핀의 전원 풍경과 농촌 생활을 이상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국민 화가로 불렸다. 한편, 빅토리오 에다데스는 서구 모더니즘을 필리핀에 도입하며 새로운 미술 경향을 이끌었다.
현대 필리핀 미술은 다양한 양식과 매체를 아우르며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회화, 조각, 설치 미술,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창적인 작품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거나 필리핀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작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필리핀 문화 센터(CCP), 필리핀 국립 박물관 단지 내의 국립 미술관 등은 필리핀 시각 예술을 감상하고 연구할 수 있는 주요 기관이다. 또한, 여러 현대 미술 갤러리들이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며 필리핀 미술계의 활력을 더하고 있다.
12.3. 음악과 무용

필리핀의 전통 음악과 무용은 토착 문화와 스페인, 미국의 영향을 받아 다채롭게 발전해왔다. 대표적인 전통 음악 장르로는 사랑 노래인 쿤디만(Kundiman)과 현악 합주 음악인 론달라(Rondalla)가 있다. 론달라는 반두리아, 라우드, 기타 등 스페인에서 유래한 현악기들을 중심으로 연주된다. 각 지역마다 고유한 민요와 악기들이 존재하며, 이는 필리핀 음악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현대 대중음악으로는 OPM(Original Pilipino Music)이라는 자국 음악 장르가 있으며, 발라드, 록, 팝 등 다양한 스타일을 포괄한다. 최근에는 K-pop의 영향을 받은 P-pop(Pinoy pop) 아이돌 그룹들이 등장하며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필리핀 전통 민속 무용은 지역별로 매우 다양하다. 가장 유명한 춤 중 하나는 대나무 장대를 리드미컬하게 부딪히는 사이를 빠르게 발을 옮기며 추는 티니클링(Tinikling)이다. 싱킬(Singkil)은 공주와 왕자의 이야기를 담은 화려한 궁중 무용이며, 그 외에도 카리뇨사(Cariñosa), 판당고 사 일라오(Pandanggo sa Ilaw) 등 여러 민속춤이 있다. 스페인 식민 시대에는 왈츠, 폴카 등 유럽 춤의 영향을 받은 사교춤이 유행하기도 했다. 현대 무용 또한 활발하게 창작되고 있으며, 발레와 현대 무용단들이 활동하고 있다. 필리핀 문화 센터(CCP)는 필리핀 음악과 무용 공연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12.4. 문학

필리핀 문학은 주로 필리핀어, 스페인어, 또는 영어로 쓰인 작품들로 구성된다. 가장 초기의 잘 알려진 작품 중 일부는 17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창작되었다. 여기에는 동명의 마법 새에 관한 서사시인 이봉 아다르나이봉 아다르나필리핀어와 타갈로그 작가 프란시스코 발라그타스의 플로란테 앗 라우라플로란테 앗 라우라필리핀어가 포함된다. 호세 리살은 소설 놀리 메 탕헤레스페인어와 엘 필리부스테리스모엘 필리부스테리스모스페인어를 썼는데, 두 작품 모두 스페인 식민 통치의 부당함을 묘사하고 있다.
민속 문학은 스페인의 무관심으로 인해 19세기까지 식민지 영향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스페인 식민 통치 기간 동안 인쇄된 문학 작품의 대부분은 종교적인 성격을 띠었지만, 나중에 스페인어를 배운 필리핀 엘리트들은 민족주의 문학을 썼다. 미국 통치가 시작되면서 필리핀 문학에서 영어 사용이 시작되었고,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번성했던 필리핀 만화 산업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1960년대 후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필리핀 문학은 정치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많은 시인들이 필리핀의 구전 전통에 맞춰 타갈로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필리핀 신화는 주로 구전 전통을 통해 전승되어 왔다. 유명한 인물로는 마리아 마킬링, 람앙, 그리고 사리마녹이 있다. 필리핀에는 여러 민속 서사시가 있다. 부유한 가문들은 특히 민다나오에서 서사시 사본을 가보로 보존할 수 있었는데, 마라나오어로 된 다랑겐이 그 예이다.
12.5. 미디어

필리핀 미디어는 주로 필리핀어와 영어를 사용하지만, 방송은 필리핀어로 전환되는 추세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광고, 영화는 영화 및 텔레비전 검토 및 등급 위원회의 규제를 받는다. 대부분의 필리핀인은 텔레비전, 인터넷, 그리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뉴스와 정보를 얻는다. 필리핀의 대표적인 국영 방송 텔레비전 네트워크는 인민 텔레비전 네트워크(PTV)이다. ABS-CBN과 GMA는 모두 무료 방송으로, 지배적인 TV 네트워크였으나, 2020년 5월 필리핀 정부가 ABS-CBN의 프랜차이즈 갱신을 거부하면서 ABS-CBN은 필리핀 최대 네트워크의 지위를 잃었다. 주로 ABS-CBN과 GMA에서 제작하는 필리핀 텔레비전 드라마인 teleserye텔레세리예필리핀어는 여러 다른 나라에서도 시청되고 있다.
현지 영화 제작은 달라강 부키드달라강 부키드필리핀어(시골 처녀)라는 최초의 필리핀 제작 장편 영화가 개봉된 1919년에 호세 네포무세노 감독에 의해 시작되었다. 제작사들은 무성 영화 시대에는 규모가 작았지만, 1933년에 유성 영화와 대규모 제작이 등장했다. 전후 1940년대부터 1960년대 초까지는 필리핀 영화의 정점으로 여겨진다. 1962년부터 1971년까지의 10년 동안은 상업 영화 산업이 1980년대까지 확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영화가 감소했다.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은 필리핀 영화로는 1982년에 개봉한 히말라히말라필리핀어(기적)와 오로, 플라타, 마타오로, 플라타, 마타스페인어(금, 은, 죽음)가 있다. 21세기 전환기 이후 필리핀 영화 산업은 대규모 예산의 외국 영화(특히 할리우드 영화)와의 경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예술 영화는 번성했으며, 여러 독립 영화가 국내외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필리핀에는 수많은 라디오 방송국과 신문이 있다. 영어 브로드시트는 임원, 전문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 1990년대에 성장한 저렴한 타갈로그어 타블로이드는 특히 마닐라에서 인기가 있지만, 전반적인 신문 독자 수는 온라인 뉴스에 밀려 감소하고 있다. 전국 독자 수와 신뢰도 기준 상위 3대 신문은 필리핀 데일리 인콰이어러, 마닐라 게시판, 필리핀 스타이다. 언론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호되지만, 필리핀은 2022년 언론인 보호 위원회에 의해 언론인에게 7번째로 위험한 국가로 선정되었는데, 이는 13건의 미해결 언론인 살해 사건 때문이다.
필리핀 인구는 세계 최고의 인터넷 사용자이다. 2021년 초, 필리핀인의 67%(7,391만 명)가 인터넷에 접속했으며, 대다수는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12.6. 요리

말레이폴리네시아 기원에서부터 전통 필리핀 요리는 16세기 이후 발전해왔다. 주로 히스패닉, 중국, 미국 요리의 영향을 받았으며, 필리핀인의 입맛에 맞게 조정되었다. 필리핀인들은 달콤하고, 짜고, 신맛의 조합을 중심으로 한 강한 풍미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전국적으로 지역적 차이가 존재하며, 쌀이 일반적인 주식 녹말이지만 민다나오 일부 지역에서는 카사바가 더 일반적이다. 아도보는 비공식적인 국민 요리이다. 다른 인기 있는 요리로는 레촌, 카레-카레, 시니강, 판싯, 룸피아, 아로스 칼도 등이 있다. 전통 디저트로는 푸토, 수만, 비빙카 등이 포함된 카카닌카카닌필리핀어(떡)이 있다. 칼라만시, 우베, 필리와 같은 재료가 필리핀 디저트에 사용된다. 파티스, 바고옹, 토요와 같은 조미료를 아낌없이 사용하여 독특한 필리핀 풍미를 낸다.
다른 동아시아나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대부분의 필리핀인들은 젓가락으로 식사하지 않고 숟가락과 포크를 사용한다. 손가락으로 식사하는 전통적인 방식(카마얀카마얀필리핀어으로 알려짐)은 덜 도시화된 지역에서 사용되었으나, 외국인과 도시 거주자들에게 필리핀 음식이 소개되면서 대중화되었다.
12.7. 스포츠와 여가

아마추어 및 프로 수준에서 행해지는 농구는 필리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로 간주된다. 복싱과 당구도 인기 있는 스포츠이며, 매니 파키아오와 에프렌 레예스의 업적으로 인해 더욱 인기를 얻었다. 국가 무술은 아르니스이다. Sabong사봉필리핀어(투계)은 특히 필리핀 남성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오락이며, 마젤란 원정대에 의해 기록되었다. 비디오 게임과 e스포츠는 새로운 여가 활동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파틴테로, 툼방 프레소, 룩송 티닉, 피코와 같은 토착 게임의 인기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 감소하고 있다.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아시안컵에 한 번 참가했다.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2022년 1월, 첫 월드컵인 2023년 FIFA 여자 월드컵 출전 자격을 얻었다. 필리핀은 1924년부터 1980년 하계 올림픽에 대한 미국 주도 보이콧을 지지했을 때를 제외하고 모든 하계 올림픽에 참가했다. 필리핀은 열대 국가 중 최초로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여 1972년에 데뷔했다. 2021년, 필리핀은 역도 선수 히딜린 디아스가 도쿄 올림픽에서 우승하면서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12.8. 축제와 공휴일
필리핀은 다채로운 축제와 다양한 공휴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는 필리핀 국민의 깊은 종교적 신념과 풍부한 문화적 전통을 반영한다.
- 국가 공휴일: 필리핀에는 법정 공휴일(Regular Holidays)과 특별 비근무일(Special Non-working Days)이 있다. 주요 법정 공휴일로는 새해 첫날(1월 1일), 성주간(부활절 직전 목요일과 금요일), 용맹의 날(4월 9일, 바탄 함락일 기념), 노동절(5월 1일), 독립기념일(6월 12일), 영웅의 날(8월 마지막 월요일), 보니파시오의 날(11월 30일), 크리스마스(12월 25일), 리살 기념일(12월 30일) 등이 있다. 특별 비근무일에는 중국 설날, EDSA 혁명 기념일(2월 25일), 만성절(11월 1일), 성탄절 이브(12월 24일), 새해 마지막 날(12월 31일) 등이 포함될 수 있으며, 이슬람 공휴일인 이드 알피트르(라마단 종료 축제)와 이드 알아드하(희생제)도 특정 지역 또는 전국적으로 공표된다.
- 종교 축제: 필리핀 인구의 대다수가 로마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가톨릭 관련 축제가 매우 중요하다.
- 크리스마스: 필리핀의 크리스마스 시즌은 세계에서 가장 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9월부터 시작하여 다음 해 1월 초까지 이어진다. 캐럴, 장식, 심방 미사(Simbang Gabi) 등 다양한 전통이 있다.
- 부활절(Holy Week, Mahal na Araw): 예수의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주로, 필리핀에서 가장 엄숙하게 지켜지는 종교 행사 중 하나이다. 성 목요일과 성 금요일은 공휴일이며, 다양한 종교 의식과 행렬이 열린다.
- 만성절(All Saints' Day, Undas): 11월 1일로, 필리핀인들은 이날 공동묘지를 방문하여 고인의 넋을 기리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 각 지역의 수호성인을 기리는 피에스타(Fiesta): 필리핀의 거의 모든 도시와 바랑가이는 자신들의 수호성인을 기리는 연례 축제를 개최한다. 이 축제는 종교적 행렬, 미사, 거리 춤, 음악 공연, 음식 잔치 등 다채로운 행사로 구성된다. 유명한 피에스타로는 세부의 시눌로그 축제, 아클란의 아티-아티한 축제, 일로일로의 디낙양 축제, 마린두케의 모리오네스 축제 등이 있다.
- 민속 축제: 종교적 배경 외에도 각 지역의 역사, 문화, 농산물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민속 축제가 열린다. 예를 들어, 바기오의 파낙벵가(Panagbenga, 꽃 축제), 다바오의 카다야완(Kadayawan, 수확 감사 축제) 등이 있다.
이러한 축제와 공휴일은 필리핀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전통문화를 계승하며, 관광객 유치에도 기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12.9. 세계 유산
필리핀에는 유네스코(UNESCO)에 등재된 여러 세계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이 있으며, 이는 필리핀의 풍부한 역사, 문화, 그리고 독특한 자연환경을 보여준다.
- 문화유산
- 필리핀의 바로크 교회군 (Baroque Churches of the Philippines, 1993년 등재): 스페인 식민 시대에 지어진 4개의 교회를 포함한다. 이 교회들은 유럽 바로크 양식에 필리핀 고유의 재료와 장식 기법이 융합된 독특한 "지진 바로크" 양식을 보여준다.
- 마닐라의 산 아구스틴 성당
- 일로코스 수르주 산타 마리아의 아순시온 성모 성당
- 일로코스 노르테주 파오아이의 산 아구스틴 성당 (파오아이 교회)
- 일로일로주 미아가오의 산토 토마스 데 비야누에바 성당 (미아가오 교회)
- 비간 역사 도시 (Historic City of Vigan, 1999년 등재): 16세기 스페인 식민 도시의 모습이 잘 보존된 곳으로, 아시아와 유럽의 건축 및 도시 계획 양식이 독특하게 결합된 사례이다. 자갈길, 전통 가옥(바하이 나 바토), 교회 등이 남아 있다.
- 필리핀 코르디레라스의 계단식 논 (Rice Terraces of the Philippine Cordilleras, 1995년 등재): 이푸가오족이 2000년 이상 가꾸어온 계단식 논으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뛰어난 문화 경관이다. 바나우에, 바타드, 마요야오, 항두안, 키앙안 지역의 계단식 논을 포함한다.
- 자연유산
- 푸에르토 프린세사 지하강 국립공원 (Puerto-Princesa Subterranean River National Park, 1999년 등재): 팔라완섬에 위치하며, 세계에서 가장 긴 항해 가능한 지하강 중 하나를 포함하고 있다.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과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자랑한다.
- 투바타하 암초 자연공원 (Tubbataha Reefs Natural Park, 1993년 등재, 2009년 확장): 술루해 중앙에 위치한 해양 보호 구역으로, 매우 높은 수준의 해양 생물 다양성을 지닌 원시 산호초 생태계이다. 다양한 산호, 어류, 바다거북, 조류의 서식지이다.
- 하미기탄산맥 야생생물 보호구역 (Mount Hamiguitan Range Wildlife Sanctuary, 2014년 등재): 민다나오섬 동부에 위치하며, 초염기성 토양에서 자라는 독특하고 다양한 동식물군으로 유명하다. 특히 피그미 숲과 희귀 식물 종들이 특징이다.
이들 세계 유산은 필리핀의 귀중한 자산이며, 이의 보존과 관리는 필리핀 정부와 국민의 중요한 과제이다.
- 필리핀의 바로크 교회군 (Baroque Churches of the Philippines, 1993년 등재): 스페인 식민 시대에 지어진 4개의 교회를 포함한다. 이 교회들은 유럽 바로크 양식에 필리핀 고유의 재료와 장식 기법이 융합된 독특한 "지진 바로크" 양식을 보여준다.